초조(初祖) 달마의 선맥은 혜가, 승찬, 도신, 홍인 스님으로 이어지다 6조 혜능에 이르러 선의 황금시대를 열며 찬란하게 꽃피었다.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 불교의 선맥도 대부분 여기에 닿아 있다. 하지만 달마와 혜능은 물론, 이들의 법을 이어 선풍을 드날리던 조주, 임제, 운문 선사 등이 세상을 떠난 지도 이미 1000여년, 아직도 이 땅의 선방에는 눈푸른 납자들이 용맹정진에 나서고 있지만, 그때 그 선사들이 깨친 법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초조 달마에서 6조 혜능까지,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마련한 ‘선의 원류’를 찾는 순례에 동행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무엇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나’였다. 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를 외치는 서슬 푸른 가풍이 손에 만져질 듯하고, 덕산방(德山棒)의 몽둥이와 임제할(臨濟喝)의 고함이 들리는 듯한 선사(禪寺)를 걸으며, “만약에 부처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설하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일격에 때려 죽여 굶주린 개의 먹이로 던져 주었을 것이다”고 일갈한 운문 스님의 자취를 더듬으며, 무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채 속절없이 찌들어가는 나를 돌아봤다. 한국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70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산사에서 내려와 순례단을 이끌던 고우(71·봉화 금봉암) 스님이 온몸으로 전하는 법문을 들으며, 이제 내게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듯한 그 서늘한 자유의지를 그리워했다.
선사들의 자취는 바람찬 허베이(河北)·허난(河南)성의 끝없는 평원과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후베이(湖北)·안후이(安徽)성, 그리고 잿빛 하늘 아래 산야가 바야흐로 신록으로 물들어가는 광둥(廣東)성에 넓게 흩어져 있었다. 지난 5일부터 꼬박 일주일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된 순례길은 베이징(北京)과 주하이(珠海)를 잇는 징주(京珠)고속도로를 축으로, 장장 6000여리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 2. 소림사(少林寺)가 있는 허난성 쑹(嵩)산 일대는 산세부터가 달랐다.
알려지다시피 소림사는 명대(明代) 이후 소림 무술의 본산. 하지만 소림사엔 무술인들의 무술보다 훨씬 강력한 달마의 선풍과 2조 혜가의 구도를 향한 단심으로 가득하던 곳이다. 소림사 뒤쪽, 북한산 비봉능선 높이쯤 되는 오유봉(五乳峰) 9부 능선에는 달마가 9년 면벽수행했다는 달마굴이 남아 있다. 30분쯤 계단을 올라 달마굴에 이르면, 붉은색과 황금색 천으로 둘러싸인 달마상이 눈을 부릅뜬 채 순례객들을 맞는다. 동굴 오른쪽 아래엔 자신의 팔을 잘라 도를 구했다는 혜가의 단비구법(斷臂求法) 전설도 시퍼렇다. 면벽 중인 달마에게 법을 구하려던 혜가는 눈이 휘날리는 굴 앞에서 눈이 무릎에 차오르도록 밤을 새워도 반응이 없자, 자신의 왼팔을 잘라 달마 앞에 내놓았다. 눈 위에 분수처럼 붉은 선혈을 뿌리며 달마의 제자가 된 스님은 달마에게 법을 청했다.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편안케 해주소서.”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케 했노라. 너는 보는가.”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의 심성을 비춰 보라는 회광반조(回光返照). 마음을 편안케 하는 안심법문(安心法門) 한마디에 깨친 혜가는 단박에 대자유인이 됐다. 훗날 혜가는 풍질(나병)에 걸린 채 자신을 찾은 3조 승찬에게 비슷한 법문을 전한다.
“제자는 죄가 커서 풍질에 걸렸습니다. 화상께서 저의 죄를 참회시켜 주소서”
“그대의 죄를 가져오라. 그러면 네 죄를 벗겨주리라.”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보이는가, 그대의 참회는 이미 끝났다.”
# 3. 삼조사(산곡사·山谷寺) 가는 길은 멀었다.
소림사를 떠난 게 전날 밤이었는데, 안후이성 첸산(潛山)현의 삼조사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순례단을 이끈 고우 스님은 창(長)강을 건너고, 둥후(東湖)를 바라보며 달리는 버스에서 선사들의 법을 설했다. 달마가 혜가의 불안을 뿌리 뽑고, 혜가가 승찬의 죄의식을 씻어줌으로써 제자를 깨우쳤다면, 승찬은 도신의 구속감을 벗겨줌으로써 해탈로 이끌었다. 승찬의 법문도 스승과 다르지 않았다.
“저를 자유롭게 하는 해탈 법문을 들려주소서.”
“누가 그대를 속박했는가.”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속박한 이가 없다면 그대는 해탈한 사람이다.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긴 여정 끝에 순례단이 삼조사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일주문 앞에 삼조사 방장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향을 피우고, 취재기자와 악대까지 늘어선 채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환영단을 보고 흐뭇해하며 옷 매무새를 추스르던 순례단 쪽에서 벌어졌다. 고우 스님이 허례에 지나지 않는 환영에 응하지 않겠다며 장삼을 벗어던진 것이다. 흔히 수좌는 괴팍하다는 선입견을 뒤집으며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던 노선승의 눈빛이 가을서리처럼 엄격해졌다. 결국 스님의 도반인 상현(경남 양산 천성산 조계암 한주) 스님과 고우 스님을 모시겠다며 수천리 길을 날아온 철산(경북 문경 대승사 선원장) 스님이 나섰다. 기업관리학석사, 문학석사, 철학박사 따위가 새겨진 명함을 돌리고 스스로를 중국 임제종의 제43대 제자라고 밝힌 삼조사 방장이 요란하게 일행을 맞은 뒤 다과를 베풀었다. 철산 스님이 물었다.
“달마와 승찬은 어디 있는가.”
“여기에 계시기도 하고, 한국에 계시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과 극락에 계시기도 하다.”
자리를 함께했던 순례단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것 말고!”
철산 스님이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박수를 중단시키고, 다시 물었다.
“나이는 몇 살인가, 그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가!”
뜻밖의 물음에 당황한 가이드는 통역조차 못했지만, 상대방이 분위기조차 모를 리는 없었다. 능란하게 손님을 응대하던 철학박사 방장이 입도 열지 못한 채 얼굴이 벌개졌다. 이튿날, 물음의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스님이 나직이 말했다.
“선방 수좌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중요하고 기초적인 물음입니다. 논리나 생각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본래 면목을 보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물음은 선객들 사이의 예의이자, 상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이기도 합니다.”
# 4. 순례의 절정은 광둥성 사오관(韶關)시 조계에 있는 남화선사(南華禪寺)였다.
조계문(曹溪門), 보림문(寶林門), 천왕문(天王門), 대웅보전, 영조탑(靈祖塔)을 지나 조전(祖殿)에 이르자 아연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인중광(祖印重光)이란 편액이 걸린 조전 안에 들어서자 좌선한 채 열반한 모습 그대로 유리관에 봉안된 6조 혜능 스님의 진신상. 좌우에 16~17세기 고승 감산·단전 스님의 진신상과 나란히, 새까맣게 옻칠이 된 혜능의 진신상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막혔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힌 채 살며시 눈을 감은 모습은 결코 죽은 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조금의 과장 없이 살아 선정에 든 모습이었다.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승찬 스님은 선 채 입멸했고, 당대(唐代)의 등은봉(鄧隱峰) 선사는 물구나무 선 채 열반에 들었다지만, 삶과 죽음의 틈새를 저리도 완벽하게 메운 진신상은 또 다른 경이였다.
혜능이 누구인가. 나무를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던 혜능은 어느날 저잣거리에서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起心·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다)이란 구절에 발심, 황메이(黃梅·지금의 황메이현) 오조사에서 법을 펴던 5조 홍인 스님을 찾아간다. 홍인의 문하에서 행자가 된 혜능이 방아를 찧으며 때를 기다리던 어느날 홍인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제 나의 법맥을 전해 주고자 하니, 게송을 지으라”고 말한다. 게송을 먼저 지은 이는 수제자였던 신수였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라.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라.”
이를 전해들은 혜능은 “보리(깨달음)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먼지가 끼겠는가”라는 유명한 게송으로 그날 밤중에 홍인의 법을 전수받는다.
시기하는 자들을 피해 숨어 지내던 혜능이 세상에 나선 곳은 펄럭이는 깃발을 두고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며 분분하던 의론을 “마음이 움직인다”는 한마디로 잠재운 광둥성 광저우(廣州)의 광효사(光孝寺)였다. 광효사와 남화선사, 그리고 인근의 대감사(大鑑寺), 국은사(國恩寺)는 혜능이 육조단경(六祖壇經)등을 강론하며 선풍을 드날리던 곳.
혜능 진신상의 충격 탓이었을까, 대감사, 국은사와 운문 스님의 자취가 어린 운문사를 걸으면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탈해 여여한 혜능의 잔상만 자꾸 떠올랐다. 그렇게 마지막 날에 이르러 광효사 경내를 거니는데, 순례 중 들었던 고우 스님의 법문이 순서 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엇이 너를 불안케 하고, 묶는가. 보라,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있음과 없음, 옳고 그름 따위, 형상에 휘둘리지 말고 본질을 보라. 지혜로 관조하라. 그렇게 관조할 때 드러나는 네 생긴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지혜가 없으면 세상의 온갖 선업이며 정진이 모두 헛것이지만, 그것의 기본만 제대로 보아도 너는 자유인이다. 지혜로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형상에 휘둘리며 비롯되는 21세기 현대사회의 구속과 무한경쟁과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무한상승에 이르는 길이다. 아, 너는…,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