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이 지난 1월30일 세상을 떠났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불리는 그는 불교와 관련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독일에서 스승인 존 케이지를 만나 불교를 접한다. 불교를 단지 소재로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정하고 도전하는 선의 정신이 그의 작품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글은 지난 2003년 본지 '수미산정'에 실린 김인경 교수(조선대 미대)의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단하소불'이다.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단하소불
우리 나라 문화예술계엔 우리 국민 모두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연로한 나이에 병환으로 거동도 편치 않으면서 아직까지 정열적인 창작활동을 계속하며, 매년 세계 100대 현대 미술가의 최 정상급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백남준(1932~ )은 작품 이전에 한 인간의 삶의 역정에 있어서도, 그 자유를 향한 의지와 창조정신이 위대한 표상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자신이 예술로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끊임없는 반동과 역설의 메시지로 예술과 역사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몰두하였고, 다시 그가 깨버렸던 환상과 몽환을 역이용하여 이제는 관객들에게 무한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가 급진적인 전위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1960년 독일에서 펼친 한 퍼포먼스는 당시 세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한국 태생의 30세의 젊은 작가는 ‘피아노를 위한 습작’이라 명명된 퍼포먼스 도중 멀쩡한 피아노 두 대를 때려부수어 버렸다. 또한 그 자리에서 그는 그의 음악적 스승이던 미국의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넥타이와 와이셔츠 등을 찢어버리는 행위까지 연출하였다. 백남준은 그 후 1962년에도 역시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바이올린 독주’라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바이올린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가 바닥에 내리쳐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20세기 초, ‘다다’라고 하는 반 예술 운동 이래로 파괴적 성격의 예술행위는 계속되어 왔으나, 백남준과 존 케이지 등이 속했던 당시 작가들의 행위가 단순 파괴적인 예술과 구분 되야 할 점은, 그들이 일본으로부터 처음 전해진 선(禪), 즉 ‘ZEN’사상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오랜 기간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선 수련을 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관한 불교적 이해를 현대 서양의 미술사조와 접목하려 노력하였고, 실제로 백남준은 ‘머리를 위한 선’(Zen for head, 1961)이나 ‘영화를 위한 선’(Zen for film, 1965)등 선을 작품의 직접적인 주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백남준은 서양의 고전적인 역사를 머금고, 귀족적이며 고도로 정제된 화음의 대표적인 악기인 피아노를 사정없이 박살냄으로서 관객들 앞에서 그것의 상(相)을 파괴하여 하나의 물체로 전락시켜 버렸던 것이다.
중국의 선승 단하 천연(丹霞 天然, 739~ 824)선사가 낙양 혜림사에 머물 때, 어느 추운 겨울 날 법당에 모셔져 있는 목불(木佛)을 들어내다가 쪼개서 불을 지펴 몸을 녹이고 있으니 원주가 뛰어나와 어찌 불상을 그럴 수가 있느냐며 길길이 뛰었다. 단하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를 ‘부처를 다비하여 사리를 찾으려 한다’고 했다. 원주가 다시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겠느냐고 대꾸하자 스님 왈 ‘만약 사리가 없는 부처라면 네가 왜 나를 책망하느냐’고 하였다 한다. 그 복 많은 원주가 단하스님의 친절함 덕분에 견성하여 실다운 부처를 이루었는지 이후를 모르겠으나, 부처나 조사의 허상을 쳐부수는 수많은 선사들의 노파심절은 장쾌하기 그지없다. 또한 위대한 예술가의 창조적 안목은 범인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본질을 날카롭게 들어내어 사람들의 길들여짐을 일깨운다.
부처는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소리로서 구하려하면 이는 사도를 행하는 자로서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고 직접 말씀하셨다. 우리는 혹여 신앙인을 자부하면서도 스스로 몹시 편협하고 이기적인 부처 하나씩을 조성하여 품고 다니면서 세상을 멋대로 재단하는 담판한(擔板漢)은 아닌가 자주 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