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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의 출발은 인재·교육불사” 0
 작성자: 사무국  2005-04-26 17:31
조회 : 3,857  
<법문하는 성관스님>
본지가 조계사와 공동으로 여는 연속 기획법회 ‘한국불교 미래를 듣는다’서 24일 수원포교당 주지 성관스님이 ‘지역과 함께하는 불교’를 주제로 법문했다. 사부대중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법회에서 스님은 “한국불교의 포교 핵심은 교육에 있다”고 전제하고 “처음도 좋고 중간도 끝도 좋을 정법불교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 내용을 정리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부처님 말씀 중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무위의 복이 수승함)과 존중정교분(尊重政敎分, 바른 가르침을 존중함)을 법공양으로 올리겠습니다. “수보리여 항하에 있는 모래 숫자와 같은 그러한 모래수만큼 항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다고 하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모든 항하만이라도 오히려 많아서 셀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수보리여 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이르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써 저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 세계에 가득 채워서 이것으로 보시한다면 얻을 복이 많겠느냐?” 부처님은 다시 수보리에게 이르셨습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남에게 말해주면,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 수승하리라.” “그리고 또 수보리여, 어디서든 법문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니, 이곳은 모든 세간의 천, 인, 아수라가 모두 응당 공양하기를 부처님 탑묘같이 하리니, 가장 높고 제일 희유한 법을 성취하리라. 만약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부처님과 존중받는 제자가 있는 것이 되느니라.”
제가 오늘 법공양을 올린 것은 부처님 말씀을 베풀어서 참삶을 살자는 의미입니다. 저는 항상 모든 행사를 봉행하고 불자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한다면 마땅히 삼귀의를 올리고 부처님말씀을 공덕하는 것(법공양)을 생활화합니다. 이는 한국불교가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들을 제도하고 함께 하는 힘을 갖게 해줄 것입니다. 저는 수원지역에서 20여년간 포교에 주력했습니다. 종도들이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인정하여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인줄 압니다만, 그동안 경험하고 느낀 것을 위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확고한 인생관 확고한 우주관이 바로 선 뒤, 그 위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농어촌부터 시작해 산중마을과 중소대도시 등 여러 가지 유형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 수원포교당은 1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 앉아있습니다. 세상은 통치 패러다임이 있는 법입니다. 포교에 있어 가장 핵심은 통치하는 틀을 직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군사정부를 뛰어넘어 민주주의 자본주의시대, 지식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농경사회를 체험했고 나라를 빼앗긴 적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도 겪었습니다. 매우 다양한 경험을 가졌고, 조금 비관적으로 말하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시대는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운영의 틀. 통지의 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 경제, 그리고 교육입니다. 정치와 경제와 교육이 잘 맞물려 돌아갈 때 사회가 안정됩니다. 육바라밀 중 제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보시바라밀입니다. 보시바라밀에는 진리를 가르쳐주는 법보시(法布施)와 재물을 나눠주는 재보시(財布施),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있습니다. 법보시는 교육, 재보시는 경제, 무외시는 정치와 연관됩니다. 따라서 법보시와 재보시와 무외시가 잘 이뤄져야 세상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틀이 원활해야 모든 것이 잘 이뤄집니다.
내 스스로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었는가, 정신적으로 편안한가 등을 잘 알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 남편 자식 부인에게도 매달려봤지만 나이를 먹고 이제 점점 몸에서 힘이 사라져가면 사는 것 자체가 허망해지기 마련입니다. 또 요즘 정치권을 보면 개혁을 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개혁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나 믿을 사람이 없어지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괴로움을 갖습니다.
이처럼 혼돈의 시대, 두려움의 시대에 우리들 마음속에는 믿음이 살아있어야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사라질때 그 믿음을 회복하고 혼돈을 극복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바로 그것이 포교의 핵심인 교육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서양인들도 교육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고들 말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믿음이 생길 때 행복과 안온함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일까요. 개신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은 이세상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교황이 선종하셨을 때 지금 하나님께서 천국의 문을 열고 교황이 거기 오르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주 자신있게 말입니다. 개신교의 두 번째 믿음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믿음은 마치 죄지은 자가 그 죄를 사하고 다시 일어나듯. 예수님이 모든 중생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따라서 다시 부활하길 믿는 것입니다. 개신교도들은 그런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해 보입니다. 불자여러분들은 그런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부처님은 매일 부활합니다. 영원히 사는 믿음을 갖고 두려움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믿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 그리고 모든 욕심과 집착을 놓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곧 부처님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정안(正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생깁니다. 그 이해속에서 깨달음이 이뤄집니다. 부처님은 나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있어 이 조계사 법당에 오셨고, 제가 온 것은 조계사 법당이 있어서고, 수원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한남대교가 이어졌고 경부고속도로가 뚫려 있기 때문에 올 수 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수원포교당이 여러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두가 다 함께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렇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해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과일이 익은 만큼 맛을 내는 이치와 같습니다.
지역과 함께 하는 불교 역시 이러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공염불이나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바탕이 돼야합니다. 그것은 생명력 있고 지속가능한 법(法)이 됩니다. 왜 신심이 사라져갈까요. 바로 근본적인 믿음이 바로서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조건이 달라지만 싫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줄도 모르고 맹신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불자여러분들을 혹시 타종교인들로부터 미신을 믿는다고 비난받은 것이 없으신가요. 병이 났는데 이것에 좋다고 이약 먹고 저것에 좋다고 저약먹고 마구잡이로 섭취한다고 치유가 될까요 정확한 진찰이나 검사도 없이 약을 먹으니,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열악해지면 회의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걸어다니고 생각할만하니까 부처님을 부르지 정말 죽겠으면 부처님을 부를 수 있을까요. 조건이 나빠지면 심지어 개종까지도 하게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확고한 믿음은 교육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몸이 아프고 힘이 들 때, 혹은 상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부처님전에서 물러나지 않고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곳 조계사 대웅전은 94년 종단개혁부터 98년 종단사태 등 한국불교가 큰 홍역을 치렀던 본자리 입니다. 당시 저는 종단의 중심에 서서 종무를 보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불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심히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새싹이 움트듯, 신도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전국의 불교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이 전생에 그런 공덕을 수도없이 닦아왔기 때문에 그 마음 가운데 깊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믿음의 뗏목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물러서거나 파산되거나 침몰되지 않도록, 보고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깨달음을 지향해야 합니다.
부처님말씀 중에 가장 우리 존재를 가장 자명하게 밝혀주신 말씀이 연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법을 100분의 1만 알아도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좋은 책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해볼 수 있습니다. 연기법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그것이 곧 우주관이고 불교의 세계관이고 만물의 존재에 대해서 법칙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믿고 의지하는 것이 없는 혼돈의 세계에서 홀연히 벗어나 피안의 언덕에 오를 것인가 정토에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탈열반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중도’라는 방편을 통해 여러분들의 인생관을 닦아나가십시오. 사성제 팔정도의 정신을 천수경을 달달 외듯이 읽고 이해해보십시오. 우리 불자들은 천수경을 외는 사람은 많아도 팔정도를 말하라면 모릅니다. 특히 노보살님들은 천수경을 달달 외고 손자 며느리 생일까지 다 외우면서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어렵다는 이유로 간과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을 갖고 연기법과 중도 사성제 팔정도를 인생의 피안의 언덕에 갈 뗏목을 잘 만들어보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을 뗏목을 만들어봅시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이치와 맞아 떨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생각들은 원인과 어떤 조건이 화합해서 이뤄졌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이 법회도 불교신문과 조계사가 좋은 계획에 의해서 여러 신도님들이 서로 모일 수 있도록 도왔고, 여러분들이 모여있어 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사라지면 저도 돌아가고 여러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기뻐있다면 나와 여러분들의 조건이 모아져서 이뤄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연의 연기법 인과법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 있는 여러분들이 하는 좋은 행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대자연의 인과의 법에 순응하고 조화롭게 대처하면 거기에서 복이 생기고 생명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을 확실히 가질 때 신심을 생깁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매사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이해하면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활로가 보입니다. 고통에 빠진 사람들도 그 고통의 정체가 무엇인지 바라보고 그 잘못된 조건들을 벗겨보면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을 지성으로 대하면 세상이 보입니다. 세상을 지성으로 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말과 행동 베풀고 지성으로 대해보십시오. 변해지기 시작합니다. 왜 변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한달 두달이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여러분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부처님을 통해 영험을 일으키는 것이지 이 부처님이 영험을 일으켜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역과 함께 하는 불교 역시 굳건한 믿음만 가질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첫째도 신심 둘째 셋째도 신심입니다. 그 신심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말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삼천배를 하고 뜻도 모르는 천수경을 외는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정말 가장 기본이 되는 부처님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바르게 세우고 내가 익혀가는 만큼 세상에 부처님의 말씀을 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것이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지속적으로 정진하지 못하고 조건이 어려워지니까 힌두교라하는 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불교가 인도에서 자연사(自然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다시 불교가 소생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명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260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불교가 최고의 가르침이 된 힘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과학문명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전하고 인간이 아무리 타락한다 해도 인류의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와 함께 여기 앉아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매사에 대하면 여러분들의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포교를 함에 있어서도 일부 스님들은 가람이 좁다고 어렵다는 생각을 우선시합니다. 두두물물이 다 불성이 있습니다. 바른 눈으로 보면 산하대지가 모두 내 스승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으면 좁은 법당이 법당이 아니고 산천이 모두 법당인 것입니다. 산천초목이 다 법사입니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최고의 조건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넓고 광활하지만 너무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문밖만 나가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움이 모여져 있는 것은 보기 드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아름다운 자연속에 부처님이 앉아 있습니다. 이 사찰은 이 사찰대로, 저 사찰은 저 사찰대로, 이 신심 저 신심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있겠습니까. 한국불교가 평화나 환경, 인권이나 외국인노동자 등의 현안에 적극 대응할만한 역량을 현재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현안에서 멀리 있다해도 지금 당장 지성을 다해서 오는 사람들을 잘 제접만 해줘도 그것이 전문화사회에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을 할 수 있도록해주면 우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바탕없이 통일 인권 평화 등을 불교적인 안목이 아닌 세속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도심포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지스님뿐만 아니라 신도들이 신심을 내서 잘 하면 기적처럼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불교에서는 교육이 관건입니다. 교육 인재양성에 인색하면 안됩니다. 수원포교당을 키워가면서 1000여평에 달하는 문화원을 7-8년에 걸쳐 지었습니다. 5-600명에 달하는 고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했습니다. 인재양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보다 더 좋은 교육프로그램은 없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번 가족끼리 법공양을 올려보십시오. 법공양 구절을 올리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이 밤새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합니다. 우리 수원포교당 직원들도 아침마다 법공양을 하도록 합니다. 7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아침 조회할때마다 사시공양할 때 신도님들이 공양을 올리도록 합니다. 자기가 왜 이 법공양을 냈는지 소감을 말하면 함께 공유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런 감동과 믿음을 일으킬 때 인연에 맞는 좋은 말씀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복지도 중요한 교육불사입니다. 조계종을 비롯한 재가불자들이 운영하는 불교복지관은 전국에 약 500여곳에 달합니다. 이것 자체가 불교가 지향하는 모습입니다. 바로 그런 존재가치가 정법 처음도 좋고 중간도 끝도 좋을 정법불교를 하겠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역할입니다.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이끌고 견인해가는 대표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부심과 아만을 갖을 것이 아니라 풀잎처럼 누워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한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조계사가 무엇을 하냐에 따라 전국에 전법정신이 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바로설 때 기독교도 가톨릭도 바로서고 국가가 바로 섭니다. 사찰은 나이들어 심심풀이로 오는 곳이 아닙니다. 이제 지금이라도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깨어날 때 한국불교가 깨어납니다. 내 스스로의 업을 선업으로 바꿔서 인과법에 순응해 다시 원력을 세워 내 몸을 변화시키십시오. ‘여우의 마음’을 ‘사자의 마음’으로 바꿔 ‘부처님의 마음’으로 향해 갈수 있도록 정진합시다.
정리=하정은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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