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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비생 제도(上) - 도입 배경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10-05-18 15:37
조회 : 4,020  

제1회 승니강습회 확대.발전…‘종비생 제도’로 전환

제1회 승니강습회 모습.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의 모습.(출처 <사진으로 본 통합종단 40년사>) 관련 기사를 다룬 1964년 1월 불교신문 보도.(사진 아래)

1964년 1월 동국대서 총무원.동국대 주최 강습회

일타.석정.묵언.홍법스님 등 중진스님 총망라

당시 총무원장 경산스님 “성실히 수강하길” 당부

전통강원 교육 현대대학으로 급변…종비생제 단초

종단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4년간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현재 그 돈은 본사나 은사 등 개인이 부담한다. 마치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생이 자비(自費)를 들여 학교를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종단이 부담해서 스님을 양성한 적이 있다. 이를 종비생(宗費生)이라고 한다. 종비생은 ‘종단이 부담하는 학비로 동국대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조계종 스님’을 말한다. 종단이 학업이 우수한 스님을 선발해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다.

종단은 1기와 2기생만 전액 학비를 부담해 인재를 양성했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보다 경제 사정이 훨씬 어려울 때 종단이 비용을 부담해서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발원했다는 점이다. 제2차 대전 후 정부를 수립한 신생독립국 중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경제와 정치 양 부문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원동력이 자식 공부에 생을 바친 부모의 교육열이듯 우리 종단의 어른스님들도 승려교육에 종단의 사활을 걸었다. 종비생 제도가 바로 그 성과물이다.

종비생 제도는 정화의 결과물이다. 비구승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불교계 내부의 혼란을 겪으면서까지 정화를 추진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사회는 의아스럽게 여겼다. 또 문자를 멀리하고 현대 학문을 배우지 못한 젊은 비구승들이 현대화의 과제를 짊어진 신생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회 여론이 많았다. 이를 잠재우고 믿음을 주는, ‘대처승과 다르고 이들이 하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종단 3대 사업 즉 승려교육, 역경, 포교다. 승려교육은 처음에 전통강원 중심으로 짜여졌다. 제2회 종회에서 제정된 교육법에는 3년간의 초등학림과 이어 4년간의 전문학림을 두었는데 이 교육은 모두 전통강원이었다. 교육법에는 종비생 제도도 두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은 없이 국외 또는 국내에 종비생을 파견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즉 현대 학문을 배워야한다는 당위성은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안까지 마련하지는 못한 것이다.

전통강원 중심의 교육이 현대식 대학 교육으로 급선회한 것은 1964년 초다. 1963년 11월 이듬해 예산을 다루는 제5회 종회에서 처음으로 3대 사업이 등장한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승려교육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다. 3대 사업도 추진한다는 원칙적인 안(案)과 예산을 편성할 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없는 상태다. 그런데 1964년 1월25일 열린 제6회 임시종회에서 갑자기 동국대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 통과한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3대 사업 추진의 건에 대하여는 총림을 위시한 교육문제는 행정부에 위임하고 재래강원은 존속시키며, 진보적인 교육은 승가대학의 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두어 교육하고 제복 기숙사 학비 등 제 문제는 총무원에서 방안을 마련토록 한다.’ 이 결의안은 당시 종회의원 녹원스님(전 동국대 이사장)의 발언을 그대로 합의한 내용이다.

1964년 1월25일 중앙종회에서 현대식 승려교육을 동국대에서 전담키로 결의하고 곧바로 3월1일 종비생 1기가 입학했다. 왜 갑자기 전통강원에서 동국대 종비생으로 제도가 바뀌고 그처럼 서둘러 실시했던 것일까. 종비생 제도가 실시된 배경에는 동국대가 대처승단에서 통합종단 소속으로 변경돼 종단 3대 사업에 적극 동참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스님들은 현대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했지만 대학을 수립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미루다 동국대가 종단 소속으로 변화면서 실마리를 찾게 됐다.

동국학원은 정화가 진행되던 1950년대 말부터 임시이사 체제로 개편되다가 통합종단 이후 경산스님, 서운스님, 벽안스님, 능가스님 등 종단의 주요 스님들이 임시 이사로 들어가면서 종단소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총장은 대처승이 그대로 장악하고 있었는데 종단 소속 임시 이사들의 비판과 학생들의 저항으로 결국 통합종단이 임명하는 총장으로 바뀐다. 1963년 7월30일 취임한 김법린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총장은 학풍수립, 교수회 강화, 재단소유 임대 개발을 통한 재원확보 등 6개 항의 주요 시책을 발표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종단 3대 사업 적극 동참이었다. 김 총장은 취임 후 이듬해 두 가지 획기적인 사업을 추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스님들 교육이고 또 하나가 동국역경원 설립이었다. 김법린 박사가 동국대 총장에 취임한 것을 얼마나 감격스러워했는지에 대해 월탄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김 박사를 총장으로 모신 것은 당시 총무원장이며 동국대 이사장인 경산스님, 교무부장이며 학교 상무이사인 숭산스님, 그리고 재단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오법안스님이었다. 김 총장은 감격해했다. 부처님 덕분에 불란서에서 유학까지 하는 불은을 입었는데 그 빚을 못갚아 안타까워하던 참에 당신 인생의 마지막에 부처님께 시봉할 기회를 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김 총장은 그 첫 번째 사업으로 비구승에게 현대학문을 강의하는 수업을 마련했다.”

그 강의가 1964년 1월6일 동국대와 조계종 총무원이 합동으로 실시한 제1회 승니특별강습회다. 이 강의는 종단의 스님들과 동국대 교수가 강사로 나와 스님들에게 불교와 현대 학문, 그리고 사찰경영에 필요한 수목재배 등을 강의한, 최초의 승려 현대 교육이었다. 원래 1월부터 보름간을 예정했다가 일주일 더 연장할 정도로 열기가 높았다. 수강생은 모두 150명이었는데 전국의 중진 스님들이 거의 망라됐다. 일타스님, 석정스님, 송담스님, 묵언스님, 홍법스님, 자우스님, 동림스님, 월주스님, 혜정스님, 성각스님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님들이 대부분 수강생이었다.

강습회 취지는 승니의 자질을 향상 시키고 각 분야에 걸친 지식을 함양해 현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개강식에서 스님들이 한 말을 들어보자. 그 속에 스님들이 이 강의에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먼저 총무원장 경산스님의 격려사다. “본 강습은 각자의 자질향상과 실무수습으로 종무수행의 요체가 되는 것이니 의의를 이해하여 성실히 수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보아 불교가 융성할 때는 그 나라가 흥했고 불교가 약화된 이조시대에 와서 산중으로 몰려간 때부터 국제가 연약하였음을 상기할 때 불교는 반드시 모든 여건을 합리화하여 공부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교무부장 행원스님은 “승단정화의 단계로서 3대 사업의 하나인 교육 사업 중 도제양성의 현대적 교육을 위해 강습회를 갖게 되었다”라며 취지를 밝혔다. 종회의장 청담스님의 격려사 속에는 강의의 방향이 녹아있다. “우리 승려들은 자아 수련을 계속하고 일치 화동 단결하여 자정 능력을 길러서 인천의 도사가 되기를 맹서해야겠다. 우리 승려들 자체가 무식하고 무능하고 생활력이 없다면 행해와 사회 교화의 대임을 부가할 수 없고 도리어 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각성하여 교육을 강화하고 자아수련과 역량을 배가할 것이며 될 수 있다면 사회인보다 더 일하고 노력하여 사원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립경제를 이룩하여 지금까지 신도들에게만 의존한 생활방법을 개선하여 스스로 일하여 스스로 먹고 공부할 수 있는 사원경제 확립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 사찰 임야의 개발 유림지를 개간 약초 야약(野藥) 과수의 재배 및 행정능력을 쌓아 역사적 통일종단의 대과업을 완수함에 총 매진해야할 것이다.”

불교 교리 역사와 사상을 배우는 한편 사원경제에 도움이 되는 약초 과수 재배, 그리고 법 등 사회전반적인 내용을 배운다는 취지다. 강사진과 과목을 보아도 교육 내용의 방향과 취지가 잘 드러난다. 과목과 강사진은 다음과 같다. 선학개요(청담), 선학사상(이석호), 조계종사(전관응), 율장(김일타), 인도불교사(이기영), 인도종교사상사(박성배), 중국불교사상사(이종익),한국불교사상사(조명기), 일반종교사(서경수), 불교미술사(황수영), 육림(育林)개론(권뇌택), 특수작물재배개론(김희곤), 과수재배개론(원세종), 헌법(강병두) 정부기구론(김운태), 행정(김운태) 강사진은 종단 스님과 동국대 교수들이었고 매일 8시간을 수강했다. 강습회 수료식은 1월28일 월정사에서 열렸다. 수료식은 원래 동국대에서 열기로 했는데 월정사에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수강생들 전원이 월정사로 가게 됐다.

이 사건이 강습회를 종비생으로 확대.발전시키는 징검다리가 됐다. 강습회가 동국대 종비생 제도로 확대.발전한 것이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 2622호/ 5월12일자]

2010-05-08 오전 11:35:14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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