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마련한 기획대담 ‘한국불교 지성인의 진단’ 두 번째 순서가 지난 1일 본지 사장실에서 ‘진보와 불교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열렸다. 패널로 참석한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법안스님과 진보정당건설 추진위원장 노회찬 전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다”는 점에서 불교와 진보의 공통점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대담은 딱딱한 사무실을 잠시 벗어나 야외에서도 이어갔다.  신재호 기자

   
 
 

 

 

 

 

특별대담 / 한국불교 지성인의 진단

 

노 회 찬  진보정당건설 추진위원장

최대 NGO 종교가

대중 속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법안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불교는 차별과

억압 없는 사회 지향

세간과 출세간의 ‘가교’

 

 

서두는 불교와의 인연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했다. 모친이 독실한 불자인 노회찬 위원장은 사찰과 친근했던 유년시절을 소개했다. 고향 뒷산에 있던 절은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은 여름방학을 구례 화엄사 지장암에서 보냈다. ‘광주’ 이후 1981년의 고창 선운사 참당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암자에서 한 달간 머물며 ‘운동가’로서의 삶을 결단했다. 지금도 정치적 고비를 맞거나 진로가 탁해지면, 절을 찾아가 스스로 해법을 묻는다. 그는 “불교는 내게 공기와 같다”고 말했다.

본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법안스님 역시 사춘기에 접한 불교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고교 시절 우연히 사찰에 들르게 됐고, 검박하고 경건한 스님들의 생활태도에 그대로 매료됐다. 곧장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해 여기까지 왔다. 불교가 공통분모임이 확인되면서 화제는 불교와 인간, 불교와 사회로 옮아갔다.

노회찬 위원장은 “불교의 가르침에는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을 예로 들면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구분을 떠나 더 많은 복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것이 불교의 참다운 원력이자 진보의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에 법안스님은 인류의 행복과 발전에 기여한 진보적 가치에 주목했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어려운 이웃들을 가까이서 기꺼이 보듬어주는 것이 진보”라며 “인간이 진보 쪽으로 반의 반걸음만이라도 옮겨갔을 때 역사는 진정한 발전을 이뤘다”고 역설했다.

 

 

-진보와 불교는 압제와 차별의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안스님 : 불교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종교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뿌리 깊은 인습이었던 카스트제도에 반대하며 모든 생명은 평등하고 존귀하다고 외쳤다. 가장 낮은 하층민조차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고, 심지어 여성까지 교단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급진 좌파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을 교화하는 형식과 모습은 과격하지 않고 자비로웠다. 포용과 화합에 기초한 방법론으로 국민과 사회의 마음을 변혁시켰다. 기득권층을 부정하거나 매도하지 않은 덕분에 왕족과 부호들도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불교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이것이 진리임을 깨닫도록 도왔다.

노회찬 위원장 : 부처님은 진보적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음에 동의한다. 인습의 타파는 오늘날에도 소중히 여겨야할 관점이다. 무엇보다 절대자를 숭배하지 않는 종교라는 점에서 진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굴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누구나 깨우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는, 탐욕의 장애와 정치적 신념의 장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보수든 진보든 추구하는 바는 차별과 억압이 적어지고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다. 정치인이라면 피상적이고 관성적인 이해를 넘어 불교를,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활용해야 한다.

-부처님이 지향했던 이념적 좌표는 ‘포용적 진보’였던 것 같다.

법안스님 : 버림받은 사람을 어루만지고 일으켜주는 손길은 어느 고등종교에나 공통된다. 수행과 포교에서 부처님이 보였던 모습은 아랫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윗사람에게도 평화로웠다. 당대 지배구조의 혁파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인정하고 포용했다. 이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간접적인 메시지로 훈계하면서 위정자들의 선정을 촉구했고, 우회적으로 실정을 비판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부처님은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희대의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제도한 뒤 출가시켜 교단에 머물게 했다. 그러나 여하튼 국법을 어겼으니 범죄자를 처형해야 했던 국왕은 교단으로 찾아가 앙굴리말라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부처님은 ‘살인자 앙굴리말라는 이미 사라졌고, 나와 함께 있는 이는 새롭게 태어난 비구 앙굴리말라’라며 인계를 거부했다. 놀라운 것은 국왕이 부처님의 말씀에 순순히 물러나 돌아갔다는 점이다. 권력층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국법보다 중히 여긴 이유는 부처님의 따뜻한 교화, 언행이 일치된 교화 때문이다.

-그간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불교가 진보적 가치 구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만한 성과를 냈다고 보는지.

노회찬 위원장 : 부처님의 수행은 기득권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신상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고통을 고뇌의 대상으로 삼았다. 올바른 정치를 생각할 때 가져야 할 기본자세다. 불교는 한반도에서 종교 이상의 역할을 해왔다. 국가를 지배하고 권력을 비호하는 종교가 아니라 문화적인 종교, 생활적인 종교의 역할을 해왔다. 물론 사람이 행하는 일이다보니 간혹 종교의 기본정신에서 이탈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흠결이 불교의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에 관여하면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불교가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알게 됐다. 실록을 지킨 주체는 사찰이고 스님이었다. 임진왜란이란 어려운 시기에 승병을 조직해 왜군과 맞서 싸웠다. 무엇보다 21세기에 부각된 가치인 생태 환경 복지에 불교의 중생구제 정신이 들어맞는다. 과거 불교가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듯, 앞으로도 더 무거운 책임이 요구된다.

- 진보 진영이 불교 안에 깃든 진보적 가치를 어떤 식으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는지.

법안스님 : 불교가 지향하는 진보는 차별 없는 사회다. 인권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다. ‘무주상보시’라는 <금강경>의 설법에서 보듯 불교는 선별적 복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부처님은 보시할 때 머뭇거리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보상에 연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불교는 보시를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본다. 민생의 고른 안정과 마이너리티에 대한 옹호에 힘쓰는 진보정당에 감사하고 있다. 다만 이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더 많이 가졌으면 한다. 부처님과 같이, 재벌과 권부와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테크닉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진보를 더욱 편안하고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우리 사회에는 보수적 진영과 가치가 엄존한다. 결국 보수와의 소통과 화해가 사회통합의 첫걸음이라 본다. 보수와 진보가 갈등하는 원인과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노회찬 위원장 : 어느 나라나 보수와 진보가 대립한다. 관건은 갈등해소를 위한 타협점 찾기다. 공존하려면 서로 존중해야 한다든 것이 다원적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당장은 충돌하더라도 조만간 조정될 수 있도록 합의절차가 제도화돼야 한다. 국민들의 정서엔 보수와 진보가 다양하게 분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와 언론은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보수 여당과 보수 신문의 힘이 월등히 크다. 보수와 진보가 정책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편향적이고 그릇된 법제도를 고쳐나가는 것이 정치의 정도다. 어느 한쪽의 언로가 막히거나 비틀어진다면, 이는 불공정한 경기다. 합리적 경쟁의 제도화, 우리나라 정치 발전의 밑거름이다.

법안스님 : 한국의 보수는 객관적인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친일의 행적부터 더듬을 때 보수층을 자처하는 사람을 보면 과연 정직한 보수인가 의문이 든다. 승려로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자칭 보수주의자일수록 배타적이다. 반면 진보라고 소개하는 사림일수록 생각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불교는 마음의 경계를 열라고 한다. 자기 안의 편견, 아상(我相)을 탈피해 나와 네가 결국 하나라는 깨달음을 추구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균형 잡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치권의 과제라면, 국민들의 정신적 기저를 개선하는 일이 종교인의 할 일이다.

 

좌담에서는 최근 조계종 제33대 집행부가 장구한 원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성과 쇄신 결사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자성과 쇄신이란 결국 스스로 부처임을 깨달아 부처님답게 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법안스님과 노회찬 위원장 둘 다 같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대중 속으로 보다 깊이 들어가 대중과 고락을 같이하며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다. 아울러 노회찬 위원장은 불교의 청년화 대중화를 주문하면서 연대를 약속했다. 법안스님은 구조적 모순의 철폐를 위한 진보계열의 정진을 당부했다.

 

- 자성과 쇄신 결사에 입각해 진보와 불교가 함께 서야 할 사회적 역사적 지평이란.

법안스님 : 부처님같이 살려면,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연약한 존재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약자가 발생하는 이유가 구조적인 문제라면 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4대강 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국가정책은 국민의 복리와 번영에 이바지해야지, 고통을 양산하고 가중해선 안 된다. 국민들의 희생으로 어렵게 획득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도록 불교와 진보가 함께 나서 당당하고 결연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노회찬 위원장 : 종교는 우리나라 최대의 NGO다. 구체적으로 나누면 정치와 종교의 역할은 각각 다르지만, 진보진영의 숙원 가운데 하나인 보편적 복지와 대자대비 정신의 일치를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불교에나 진보에나 더욱 적극적인 현실참여가 요구된다. 국민들의 뜨거운 아픔 속으로 몸소 들어가 이들의 고통을 체험해야 보다 진실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치가 못 들어가는 곳엔 종교가 들어가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불자와 국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

법안스님 : 신라 원효스님의 화쟁(和諍) 사상은 역사적 실존적 고뇌의 산물이다. 막연한 대중교화가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어떻게 소외감 없이 국가의 구성원으로 포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다.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벗어던지고 그들이 품은 망국의 한을 보듬었다. 세간과 출세간의 가교가 되어, 세간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진력한 것이 원효스님의 삶이다.

노회찬 위원장 : 국민소득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자살률도 동시에 높아지는 나라다. 특히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탓에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의 자살이 심각한 수준이다. 누구보다도 젊은이에게 종교적 체험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그들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다가서는 불교가 되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불교, 계층과 이념을 막론하고 더 많은 국민들을 섭수하는 불교를 부탁드린다.  

사회ㆍ정리=장영섭 기자

 

[불교신문 2734호/ 7월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