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정화의 기수로 대한불교조계종의 초석을 놓고 한국불교 중흥에 앞장선 미룡당 월탄대종사의 열반 4주기를 맞아 스님의 수행과 전법, 불사 원력을 기리는 추모다례가 봉행됐다.
청주 용화사(주지 각연스님)는 8월17일 경내 용화보전에서 ‘미룡당 월탄대종사 열반 4주기 추모다례’를 봉행하고 스님의 생전 가르침과 유훈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다례에는 법주사 원로 함주스님과 조실 지명스님, 회주 도공스님, 율주 무상스님, 주지 정덕스님, 은해사 조실 법타스님을 비롯한 문도 스님들과 조기태 용화사신도회장 등이 참석했다.
추모다례는 삼귀의례, 반야심경 봉송, 상단축원에 이어 문도대표 인사말, 내·외빈 소개, 추모사, 각령전 삼배, 헌향·헌다·헌화, 종사영반, 월탄대종사 생전 육성 법문, 용화사 합창단 음성공양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문도대표 성운스님은 “은사 스님의 4주기를 맞아 삼배를 올리며 스님께서 평생 보여주신 수행과 전법, 불사의 원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용화사 미륵대불을 모시고 법당을 세운 데 이어 법주사와 대흥사에도 미륵대불을 조성한 그 큰 원력은 후학으로서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고 회고했다.
이어 “스님께서는 전법도생에 철저했을 뿐 아니라 수행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고, 노구를 이끌고 휠체어에 의지하면서까지 마지막 불사를 회향하셨다”며 “4주기를 맞아 은사 스님의 수행과 전법 정신을 다시 새기고 그 뜻을 후학들이 잘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주사 조실 지명스님은 월탄대종사가 평생 보여준 수행자의 자세와 종단에 대한 헌신을 되새겼다. 지명스님은 “큰스님께서는 출가 직후 금오 노스님 문하에서 ‘이뭣고’ 화두를 들고 수행에 전념했으며,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종단의 정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고 종단이 어려울 때마다 안정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놓으셨다”며 “열반 4주기를 맞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철저히 지우며 살았던 큰스님의 깊은 신심과 원력, 뜨거운 정열이 우리 모두와 국민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추모했다.
은해사 조실 법타 스님도 월탄 대종사와의 인연을 회고하며 “월탄 대종사는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림 없이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한국불교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며 “후학들은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불법홍포와 중생구제의 원력을 더욱 굳건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다례를 마친 뒤 참석 대중들은 월탄대종사 부도탑으로 이동해 참배하고 스님이 평생 이어온 수행과 전법의 정신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미룡당 월탄대종사는 1937년 9월15일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화엄사에서 금오선사를 은사로 출가했으며, 해인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0년 11월 해인사 강원 재학 중 전국승려대회에 강원 대표로 참석해 동산·효봉·금오·청담스님 등을 모시고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불교정화가 위기에 놓이자 대법원장실에서 5명의 비구 스님들과 함께 할복으로 항거하며 청정승단 구현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 일화는 한국불교 정화운동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종비생 1기로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서산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조계종 원로의원과 법계위원장, 중앙종회의장, 초심호계원장, 총무원 총무부장, 제5교구본사 법주사 주지, 불교신문 사장, 서울 조계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종단 발전에 헌신했다. 1988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대종사는 출가 이후 봉암사와 통도사, 대흥사, 법주사, 수덕사, 화엄사,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 끊임없이 화두를 참구하며 수좌의 본분을 놓지 않았다. 말년에는 법주사 회주와 청주 용화사·단양 미륵대흥사 조실로 머물며 참선수행과 후학 제접에 힘썼다.
월탄대종사는 2022년 8월4일 단양 미륵대흥사에서 법납 68년, 세수 87세로 원적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