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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실뭉실 힘있게 핀 꽃봉우리가 있는가하면 홑겹으로 축 처져 피는 둥 마는 둥 힘없는 꽃들이 있습니다. 벚꽃나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산에 자란 벚꽃나무는 날씨탓에 잎과 꽃이 함께 피어 도시 근교의 벚꽃과는 새삼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경전에 보면 연못의 홍련 백련 청련 꽃을 보시면서 물속 중간에 핀 꽃, 물 위에 핀 꽃, 물 위에 피지만 물들지 않은 연꽃을 보시면서 다양한 감상에 젖어있기도 하였습니다. 중생의 다양한 업의 인연에 따라 청정한 마음을 많이 오염시킨 삶,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는 삶 ,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삶, 아름다운 모습의 능력을 지닌 삶 ,가르치기 쉬운 삶 , 가르치기 어려운 삶들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아침 저녁에 올리는 예불문에는 부처님을 삼계도사(三界導師)라고 칭명합니다. 도사(導師)는 잘 가르치고 인도하며,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설하여 깨달음 무상안은(無上安隱)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함경>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의 제자들은 모두 다 무상안은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러지 못한 자도 있습니까? 세존께서 도사(導師)로서 계시는데 어떤 이유로 이른 자가 있고 이르지 못한 자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왕사성(라자가하) 가는 길을 물었다고 합시다 내가 왕사성 가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 주어도 잘 듣고 무사히 도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길을 가르쳐주는 도사일 뿐입니다.”
봄소식을 전하는 꽃들도 나뭇가지의 새잎과 땅위 새싹들도 불법을 전하는 도사(導師)로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삼계의 도사로서 온 우주의 중생들에게 부처님 오심을 일깨우며 또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이땅을 장엄하고 있지는 않는지 혜안(慧眼)의 깊은 수행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땅에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와 연기적 존재의 불성을 일깨우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나는 다만 길을 가르쳐 주는 도사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꽃을 보고 봄소식을 듣고, 새싹의 움틈을 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깨워 마음의 행복과 이 땅의 평화를 장엄하라 부촉하신 모습 같지는 않는지요?
<천수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원아정혜 속원명 (願我定慧速圓明)
원아공덕 개성취(願我功德皆成就)
원아승복 변장엄(願我勝福遍莊嚴)
원공중생 성불도(願共衆生成佛道)
(원컨대 마음과 몸, 안과 밖 수행의 깨달음이, 지혜와 자비로 더하여 공덕 성취된다면 수승한 깨달음의 복과 공덕, 중생 삶에 장엄되게 하시어 모든 중생 깨달음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우리들의 기도와 수행 그리고 그동안 닦은 복과 공덕 그 모든 것들이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가 잘 장엄되어 회향되기를 발원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르침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각각의 마음 그릇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각자 가지고 있는 그릇 양만큼 빗물이 담기듯이 부처님께서 가르쳐준 그 길을 차근차근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