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계환스님 / 논설위원ㆍ동국대 불교대학장 | ||
요즘 나라 안팎으로 어두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젊은 과학영재들이 선망하는 카이스트에서 연달아 비보가 날아들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4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들은 3.0에 미달한 학점으로 인해 돈으로 환산되는 자신들의 열등을 겪으면서, 앞으로 내야할 수업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좌절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아무런 배려도 격려도 없는 경쟁만이 학풍인양 서슬이 푸르다. 소위 영재의 산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어머니에 관한 기사가 비록 작게 다루어졌지만 역시 충격적이다. 그 애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타살을 당한 셈이다. 그래서 무정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혹독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들이 무슨 돌림병이 돌듯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엄연히 살생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자식을 죽이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식은 인연에 따라 잠시 부모에게 맡겨진 소중한 생명일 뿐인데, 그 생명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남아있는 가족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론(業論)은 결과론이 아니라 동기론이다. 따라서 업의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업을 형성하는 동기에 둔다는 뜻이다. 따라서 업이란 어떤 절대자의 힘에 의해 조종되고 순응해 가야하는 운명론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고쳐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미래지향적인 사상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대의 전생이 알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 그대의 모습을 보라. 그대의 미래가 알고 싶은가? 그러면 그대가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를 보라”고 하셨던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불교신문 2716호/ 4월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