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라면 전생 업(業)과 현생의 업이 이룬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과학적인 증명만을 믿는 과학자들은 황당하다고 할이지 모르지만 아직 과학이 증명해내지 못하는 형이상학적인 부분을 과학의 잣대로만을 들이댄다면 아직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부처님께서 <법화경> ‘약초유품’에서 설법하고 계신다.
“가섭이여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계곡과 토지에 나서 자라는 풀과 나무와 빽빽한 숲과 모든 약초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 이름과 형색이 각각 다르 느니라. 짙은 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어 일시에 똑같이 쏟아지는 그 비에 풀과 나무와 빽빽한 숲과 모든 약초의 작은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과 중간 뿌리 중간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과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이 두루 젖으나, 모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상 중 하를 따라 각각 비를 받는 바이나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그 종류와 성품에 적합하여 나고 자람을 얻어 꽃과 과실을 맺나니, 비록 한 땅에서 나고 자람을 얻어 꽃과 과실이 맺나니, 비록 한 땅에서 나고 한 비로 적시지마는 그러나 여러 가지 초목들이 각각차별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든다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문화와 공간속에 살지만 이렇게 다름은 자연이나 인간이나 다름이 없다. 같은 비를 맞아도 상 중 하가 있고 몸에 좋은 산삼을 자라게 하는가 하면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독초를 자라게도 하는데 이것은 빗물의 차별이 아니라 빗물을 마시고 자라는 생명들의 차별이다. 이러한 차별상들은 중생들의 차별상인 것이다.
중생들에게 차별상이 있는 것은 근기가 각기 다르고 정진과 게으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기가 수승하여 큰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둔하여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정진하는 사람은 지혜가 생기고 복덕이 생겨서 하는 일마다 다 성취하고 장차 성불에 이르지만 게으른 사람은 날카롭던 지혜는 아둔해지고 복과 덕이 줄어들어 빈천은 물론 삼악도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된다.
업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한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는 것이다. 업이 고정불변이라면 노력할 필요성이 없다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더불어 남에게도 감동과 환희를 주기도 한다. 담배를 끊는 작은 행위를 바꾸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가? 잘못된 언어습관이나 생활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물며 인생을 바꾸는 일은 더욱 피나는 정진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경전을 보는 간경수행이나 참선을 하는 참선 수행이나 염불을 하는 염불 수행이나 주력을 하는 주력수행이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아이가 처음부터 잘 걷는 일은 없듯이 그러나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수행이 점점 깊어지고 내면과 외면에 변화가 오면서 점점 수승한 지혜와 복과 덕이 생기고 삶이 바뀌며 세상이 불국토로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불국토면 사바세계가 불국토이며, 내 마음이 중생이면 불국토가 사바세계이듯 먼저 마음 밝히는 수행이 전제되야 자신을 올바로 곧추 세우고 같은시대 같은공간 속에 살면서 우유를 만드는 소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지 독을 만드는 독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가면 다음 생을 기약 할 수 없다.
[불교신문 2757호/ 10월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