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 스트리트’ 여의도 증권가의 십자형 횡단보도 앞에 현진스님이 서 있다. 풀 한 포기도 자라기 어려워 보이는 이곳에서 도심포교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포교 첨병의 소임을 오늘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신재호 기자

“포교사는 사람들의 마음밭을 가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는 것은 토끼머리에서 뿔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 속에 있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서울 여의도포교원 원장으로 도심포교 개척자로 손꼽히는 현진스님을 지난 6월28일 만났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찰 한 곳 보이지 않는 여의도에서 포교에 대한 의지로 30여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길 위에서 살았다”며 “매주 목요일이 되면 한 사람이 오든 두 사람이 오든 어김없이 법회를 열고 경전강의를 했다”고 말했다. 불법을 배우기 위해 절을 찾는 신도들과의 약속이 그 어떤 시급한 일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포교원은 여의도에서도 꽤 오래된 건물 10층에 위치해 있다. 종단차원에서 근처에 포교당을 열었지만 3년도 못가 문을 닫은 지역이 바로 여기다. 도심포교당이란 이름조차 생소하던 1985년 처음 문을 열어 타종교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여의도에 불심을 키우는데 앞장섰다.

꾸준히 포교에 힘쓴 현진스님의 감회 또한 남달랐다. 법당 한 켠 작은 골방에서 홀로 정진하면서도 중생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다.

“수행자는 부처님의 일생을 기억하며 발자취를 따라 향 내음을 맡으며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망의 중생은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입니다. 사람들 내면에 잠재돼 있는 불성을 일깨울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자리를 제공하면 되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도심포교당입니다.”

10·27법난 아픔…거리포교 시작

가가호호 방문, 전단도 배포

1985년 여의도포교원 개원

스님의 출가는 방황의 길 위에서 이뤄졌다. 18세 소년은 존재의 의문을 풀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겁도 없이 전주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길에서 잠을 자고 밥을 빌어먹었다. 인왕산, 삼각산, 도봉산도 올랐다. 1년여의 거리생활 끝에 스님은 늦가을 용문사에서 걸음을 멈췄다. 따뜻한 사찰 행자방은 스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1966년 행자생활은 혹독한 겨울과 함께 시작됐다. 법당에서 예경을 올리고 나무하고 밥을 지으며 불교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었다. 비록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에는 불법에 대한 믿음이 싹텄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게 된다. 마지막 날 부처님이 살아온 길을 똑같이 걸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머리를 깎았다.

시간은 흘러 어린 소년은 비구계를 받고 어엿한 출가 수행자로 다시 태어났다. 동국대에서 교학을 공부하고 은사 법인스님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학자로서의 꿈을 꿨다.

하지만 운명은 스님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1980년 ‘10.27 법난’이 발생했다. 신군부가 군홧발로 법당을 짓밟았다. 명분은 불교계 정화였다. 불교에 커다란 상처를 준 국가공권력의 위법적인 종교탄압이었다. 말 한마디 못하는 스님들은 울분을 안으로만 삼켜야 했다.

불교와 스님을 외호해야 할 신도들조차 엄청난 권력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국가의 부당함에 누구하나 나서 저항하는 이가 없었다. ‘길을 떠나라. 모든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진리를 말하라’는 부처님의 전도선언이 스님의 머리를 스쳤다.

불자는 있어도 불교를 제대로 아는 ‘불자’가 없어서 벌어진 일임을 깨달았다. 현진스님은 “불교를 되살리는 길은 전도선언을 실천해 대중들을 어둠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라 확신했다”며 “이것이 생활불교 운동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의 불교학 공부는 과감히 접었다. 스님은 다시 거리로 나갔다. 서울 강남터미널 앞이 스님의 첫 포교당이 됐다. 서울의 한 도반 절에 머물며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거리 포교’를 시작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불교를 되살려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온 힘을 쏟았다. 젊은 스님의 열정에 감동한 보살들이 전단지를 함께 배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한 여신도가 나타났다. ‘어느 절에 계시냐’는 질문에 스님은 ‘절은 따로 없고 도반 스님과 같이 있다’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보살은 스님에게 사당동의 빌딩 사무실을 무주상 보시했다. 1982년 개원법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포교를 펼쳤다. 1984년에는 목동에 포교당을 열어 신도교육을 시작했다. 스님은 집집마다 방문해 불법을 전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님의 포교운동은 1985년에 이르러 꽃을 활짝 피웠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여의도에 포교원을 마련한 것이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법회를 중심으로 어린이.청소년 법회, 가족법회 등을 진행하며 포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아파트 지역 주민포교를 위해 신문에 전단을 삽입해 포교원을 알리는 적극적인 방법을 썼다. 앉아서 기다린다고 신도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은 특히 경전을 중심으로 한 법회를 운영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교리 공부에 중점을 뒀다. 스님 또한 뒤처지지 않도록 부처님 일대기와 주요 경전 등을 쉼없이 공부했다.

지구촌 소외된 이웃 돕고자

‘월드머시코리아’ 창립

불우학생 위한 장학사업도

스님의 포교 이야기 화제는 자연스럽게 ‘월드머시코리아’로 옮겨갔다. 2011년 3월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지역 국가의 교육과 구호사업을 지원할 불교계 구호단체인 월드머시코리아(WORLD MERCY KOREA)를 출범했다.

외교통상부에 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활동을 시작한 ‘월드머시코리아’는 전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 기림사 주지 종광스님 등 해인사승가대학 12회 동문 스님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신도들은 활동이사로, 후원자로 국외이웃돕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월드머시코리아는 미얀마에 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는 인도, 네팔, 스리랑카, 몽골 등 주요 불교국가들을 대상으로 구호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현지에 꼭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현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한국에 유학온 대학생들을 활동가로 구성해 사업에 참여시켰다. 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잇기 힘든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적극 펼치고 있다.

“행복이란 서로 나눔이 있을 때입니다. 꽃은 누구에게나 향기를 줍니다. 조건 없는 보시를 실천할 때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현재 어린 불자 200여명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남을 이롭게 함을 알고 뿌듯해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행복합니다.”

일상에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쉬면 행복이 보일 겁니다. 복잡한 틈바구니 속에서 생활까지 복잡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억지로 많은 것을 쥐려는 욕망만 키울 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인도에서 가장 천한 똥지게꾼으로 출가한 ‘니이다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처님이 똥물을 뒤집어 쓴 천민 니이다이의 몸을 손수 씻겨 출가 수행자의 길로 인도했다는 이야기다.

“수행자는 항상 위대한 버림이 있어야 합니다. 머무는 법이 없듯이 움직이며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구름과 물처럼 살아간다고 해서 수행자를 운수납자라 부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같은 나무 아래 3일 이상 머물지 말라”고 하셨다. 스님의 쉼 없는 포교 원력이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더욱 기대된다.


■ 현진스님은…

현진스님은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은사는 천안 각원사 조실 법인스님. 1978년 동국대를 졸업하고 11대 중앙종회의원, 교육원 교육부장, 포교원 포교부장 등을 역임했다. 스님의 남다른 포교활동은 종단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포교대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스님은 2009년부터 3년 동안 부패방지와 국민 권리보호를 담당하는 국가기구인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주일에 100건이 넘는 서류를 처리하느라 새벽1시를 꼬박 넘기고 잠이 드는 일이 많았지만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썼다. 2년 전부터는 군포교 활성화를 위해 경기 광주 육군특수전사령부 호국사자사에서 법회를 보고 있다. 이밖에도 KBS, MBC 언론인불자회 지도법사 소임을 보고 있다.

[불교신문 2835호/ 7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