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가뭄에 농민의 애간장이 탄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각화사로 향하는 들판에도 농민들은 하루종일 호스로 물을 대며 타 들어가는 농작물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뭄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만 중생들은 진리를 갈구하며 살 것이다.
최근 종단이 쇄신안을 내걸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때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자고 외친다.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궁구하기 위해 각화사에 주석 중인 혜담스님을 지난 6월14일 만나 진리의 법문을 경청해 보았다.
![]() |
||
|
“아침 태양을 보면 기분이 좋아 ‘이게 부처님의 자비이고 지혜다’라는 생각을 가지라”고 설파하는 혜담스님. 김형주 기자 | ||
-요즘 근황은.
“4년 전 병마를 얻어 시공에 떨어졌다가 회복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 병마가 수행생활의 새로운 경지를 보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며 깨달았던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겨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했다. 은사 스님의 가르침이 들어 있는 법문 CD와 활자화된 내용을 찬찬이 다시 들여다봤다.
4개월이 지나니까 지금까지 생각했던 마하반야바라밀과 다른 마하반야바라밀이 보였다. 그것을 보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 <금강경>을 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아마 내게 병마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런 경지를 못 봤을 것이다. 병고 없이 살았다면 아무것도 못 얻었다는 말이다. 병고가 부처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각화사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이 사찰과 인연은.
“1994년 양평의 시골집에 거처를 두고 <대품반야경> 번역과 <반야불교신행론>을 쓰고 있었다. 그해 종단이 개혁불사를 시작해 그 부름을 받고 해종특위 위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직책을 맞아 4개월 동안 활동하느라 서울 조계사에 머물렀다. 일을 마치고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려 하니 도저히 내려갈 상황이 못 되었다. 그래서 주석처를 찾다가 이곳 각화사에 자리를 잡았다. 보살님이 운영하던 슬레이트집으로 된 절이었는데 2002년 대웅전 불사를 하니 그럴듯한 도량이 되었다.”
-스님께서 평소에 간직하고 계시는 좌우명 같은 경전말씀은.
“좌우명이 처음 출가때와 병마를 극복하며 마하반야바라밀을 성성하게 보고 난 뒤가 다르다. 처음 출가할 때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수계를 받고 강원에서 공부할 때는 “神通竝妙用이 運水及搬柴(신통병묘용이 운수급반시) / 신통이니 묘용이니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물 긷고 나무 나르는 일 바로 그것인 것을”의 구절을 도인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간직하고 살았다.
뒤에 와서는 (마음속에)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금강경> 구절이다. 육조 혜능스님이 깨달은 말씀이어서가 아니라 이 구절에 금강경 전체가 들어 있는 듯하다. 이 구절은 부처님 말씀 가운데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을 보고 1년이 지나니 불생불멸의 반야바라밀이 보였다.”
아침 태양을 보면 기분 좋아
‘이게 부처님의 자비고 지혜’라는 생각이 나야 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구체적인 도리는 무엇인가.
“이것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도리인데 근본부터 텅 비어 성스러운 것도 없으면서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는 선사들의 도리다. 확신해서 이 도리를 봐야 수행자로서 안목이 선다. 세간에는 수행자가 불우이웃돕기나 통일운동을 하는데 이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라 그 일은 세속인들도 할 수 있다. 수행자는 그걸 넘어 부처님의 근본법인 반야바라밀을 봐야 한다. 알음알이로만 믿고 설명할 수 없는 불성을 보아야 응무소주이생기심이 된다.”
-수행자의 생활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가.
“나는 10.27법난 때 해병대 1사단에서 군 법사 생활을 했다. 당시 군인들이 보경사에 들어가 스님을 잡아 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두달 후 제대를 하고 은사스님을 찾아가 ‘어떻게 스님생활을 할 지 몰라 대학원에 들어가 교수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은사 스님은 ‘교수는 머리 기른 사람도 할 수 있다.
중노릇은 스님만이 할 수 있다. 박사학위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스님으로 있으면서 스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었다. 그래서 교수 꿈을 버리고 부처님의 근본 뜻인 불성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불성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게 ‘중노릇’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너 스스로가 부처님’이라는 도리를 알려주는 수행자의 생활을 하려고 한다.”
-요즘 종단이 1994년 개혁에 비견될 만큼 쇄신안을 발표하며 변화하려 하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은 계율을 고치라고 한다. 지키지도 않는 계율을 받고 주고 해서 스스로 위선자를 만든다며 지킬 수 있는 계율을 만들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에 맞게 고치면 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인위적으로 계율을 만들어 놔야 한다. 모든 게 수행의 문제다. 근본적으로 나를 다스리는 교육이 참된 쇄신이다. 아무리 사회를 정토로 천당으로 만든다고 해도 개인의 수행력을 도외시한 정토는 없다. 수행으로 개인정토를 만들어 놓고 사회를 정토화하는 쇄신을 해야 한다.”
새 울음도 부처님 음성이고
삼라만상이 부처님 미소임을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
-쇄신안의 핵심 가운데 사찰재정 투명화도 있는데.
“지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세상이 물신주의다. 돈이 근본이라는 말이다. 부처님과 예수님보다도 돈이 앞서 있다. 수행한다면서도 돈이 앞서 있다. 재가신도에게 재정을 맡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더할 수도 있다. 물신주의는 오늘날 세계적인 가치관이다. 재정에서 100% 손 떼고 수행만 하라고 하면 안 된다. 스님도 책임성 있는 결재라인에 넣어 함께 사찰을 운영해야 한다. 무조건의 재정공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절집 살림살이를 온 국민이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내부에서 공평무사하게 사용하면 될 일이다.”
-한국불교의 문제점이 있다면.
“선방에서 법문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소참법문이라도 있었다. 공양 후에 차담이라도 하며 방장이나 조실 유나스님에게 지문을 했었는데 그런 곳이 없다. 적어도 선원에서는 1:1 면담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친견으로 내 경계를 말하고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냥 버려두고 3개월이 지나가면 토굴생활이나 다르지 않다. 1주일에 1회든 1:1면담이든 자신의 경지를 점검받는 수행을 해야 한다.”
-불자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나.
“신도들이 불사 잘해 다음 생에 잘 태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수행은 스님이 하고 불자들은 시봉 잘해 영적인 계좌에 공덕 쌓으려 하는데 이제는 아니다. 재가 신도 스스로 수행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견성해 정토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발 딛는 곳이 정토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불사하고 보시해야 한다. 스님과 불자가 다른 길을 가는 게 아니다. 개개인이 자기정토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행복은 의무다. 옛날 남녀가 결혼할 때는 상대방에 대해 떨림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살아가는데도 그 떨림(황홀함)이 있어야 행복해진다. 그래야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 기쁜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아침 태양을 보면 기분이 좋아 ‘이게 부처님의 자비이고 지혜다’라는 생각이 나야 한다. 산천이 부처님이고 기쁨 가득한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새 울음도 부처님 음성이고 삼라만상이 부처님 미소임을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
스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기뻐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강조했다. 사람도 기뻐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탐욕심에 의해 가려진다고 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탐욕심을 버리고 혼자 말고 함께 기뻐하면 그게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며 법문을 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 각화사가 자리한 검단산 앞에 수많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펼쳐지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 중 제일 높은 무갑산 봉우리도 행복에 겨워 활짝 웃고 있었다.
![]() |
||
■ 혜담스님은…
울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하면서 불교에 입문했다. 1969년 광덕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 승가학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지리산 칠불암 해인사 퇴설당 등에서 수행정진하다 군승 10기로 임관했다. 경북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군법사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나서 반야심경을 연구했다.
1992년 <대품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번역해 출간했다. 이후 반야사상을 바탕으로 신행활동을 하는 <반야불교 신행론> <신(新) 반야심경 강의> <방거사 어록 강설> 등을 저술했다. 1994년 개혁 종단에서 해종특위 위원을 지냈으며 호법부장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재심호계위원을 맡고 있다.
[불교신문 2829호/ 7월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