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만해 한용운 스님 열반 68주기 추모다례재가 봉행된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6월29일 오전10시30분 안국동 중앙선원 법당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 열반 68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추모다례재는 삼귀의, 반야심경에 이어 행장소개(선학원 총무이사 송운스님), 추모사, 추모법어(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 성악가 유현주의 추모의 노래, 헌향, 헌화(유족대표, 내빈), 사홍서원 순으로 엄수된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매년 만해스님 열반일인 양력 6월 29일 다례재를 지내오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도 참석해 왔다.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스님은 “일제의 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지조를 지킨 만해스님의 높은 절개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빛이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된다”며 “스님께서 독립운동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안국동 40번지 선학원에서 추모다례재를 봉행함으로써 스님의 높은 사상과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계승하고자 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선학원은 추모다례재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만해스님은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법보회(法寶會)를 조직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모임을 주도하고 당시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경성지회 회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했다”면서 “1926년 6‧10만세운동 예비검속을 당해 일본경찰에게 체포된 곳도 바로 선학원”이라고 밝혔다.
■ 만해스님 행장
1879년 7월20일(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출생. 부친 한응준 선생과 모친 창성 방씨의 둘째 아들로 속명은 은 유천(裕天), 자(字)는 정옥(貞玉)이다.
19세기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던 조선의 현실에 눈을 뜨고 출가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24세되던 해에 설악산 백담사 주지 연곡(蓮谷)스님을 은사로 사문이 됐다. 이때 계명(戒名)은 봉완(奉玩). 이후 건봉사 만화(萬化)스님 법을 이어 법호를 용운(龍雲), 아호(雅號)를 만해(卍海)라고 했다.
백담사와 오세암 등에서 스님은 불교경전과 외전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연곡스님이 전해 준 <음빙실문집>과 <영환지략>은 큰 영향을 끼쳤다. 스님은 경성 청진동에 ‘경성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해 인재를 양성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불교를 구하기 위해 영호(暎湖).진응(震應).금봉(錦鋒)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 운동을 전개했다. 그뒤 만주를 돌아본 후 다시 백담사에 머물게 된 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며 ‘신불교운동’을 제창했다.
이후 경성에서 <유심>을 창간했고, 1919년 3.1 독립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했다. 1926년 근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펴냈다. 스님은 1944년 6월29일(세수 66세, 법납 40세)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행장 출처 = 재단법인 선학원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