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성림사 주지 광용스님(사진 왼쪽)은 부처님오신날을 열흘 남짓 앞둔 지난 15일 상좌 현담스님과 오래 전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가난했던 옛 추억들을 더듬었다.
“불과 20여년 전이지만, 가난했던 우리절은 전기시설을 갖추지 못해서 촛불 켠 연등을 밤새도록 지켜야 했죠.” 신도들 집집마다 간절한 서원이 깃들어 있는 연등에 촛불을 밝혀 마당에 걸었으니, 바람에 스러질세라 두 비구니 스님은 노심초사했다.

서울 성림사 주지 광용스님은 “모과나무 아래서 밤늦도록 신도들과 둘러앉아 연등을 지키면서 고구마를 나눠먹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광용스님의 상좌이자 성림사 총무소임을 맡고 있는 현담스님은 “그 시절 밤새도록 연등 아래서 등을 지켰던 그 마음은 간절한 기도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마포 성산동 동네 깊숙이 자리잡은 성림사는 그 시절 2층 양옥을 개조해서 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셨다. 워낙 낡아서 내부 공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1층 거실과 안방을 뚫어 어렵사리 법당으로 장엄했다.

“부처님을 어두컴컴한 북쪽에 모시고 20~30명이 다닥다닥 붙어앉아서 법회를 봤어요. 오죽했으면 우리 신도들이 소변이 급해도 못나갔다고….” 당시 얘기를 떠올리는 광용스님은 웃으면서도 눈빛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부처님오신날엔 부처님을 마당으로 옮겨 모시고 봉축법회를 봉행했어요. 불단을 다시 조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또 일부 어른들은 부처님의 자리를 내려모시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시고…. 결국 실내 법당에서는 부처님을 모시고, 마당 불단에는 괘불을 모시고 두 장소에서 봉축법회를 올리는 웃지못할 상황이 됐지요.”

당시 성림사는 낡은 2층 양옥집이었다. 외관상으로는 가정집처럼 보인다. 빠듯한 절살림에 불사는 꿈도 못꿨던 그 시절, 광용스님은 행여 신도들의 마음이 위축될까봐 부처님오신날이면 신도 개개인에게 각자에 걸맞는 서원들을 손수 적어서 집에 돌아가는 손에 쥐어주곤 했다.

“뭔가 채워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그래도 부처님의 충만한 사랑을 담아주고 싶은 마음에 작은 정성으로 마련한 선물이었죠.” 성림사는 또 부처님오신날 사흘 전부터 종교와 상관없이 동네 곳곳에 떡을 돌린다.

비좁은 법당에서 봉축법회

소박한 비빔밥 나누며 웃음꽃

가난해서 더 행복했던 그 날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이 동네에 살다 돌아가신 한 할아버지가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제사를 성림사에서 꼭 지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유인즉 성림사 신도도 아니었던 이 할아버지가 생전에 동네를 거닐다 성림사에서 나눠준 따뜻한 떡을 맛나게 먹었던 인연이 있었던거다.

그게 전부다. 이 동네에서 유명한 ‘박스 할머니’도 스님들의 표현에 따르면 ‘성림사 사천왕’이다. 이 집 저 집 박스를 모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이 할머니는 대낮에 자주 술마시고 막말을 해 악명이 높았는데, 성림사 스님들이 절에서 나온 파지와 박스를 차곡차곡 챙겨드리곤 했더니 여느해 부처님오신날 법당 한복판에서 “내가 부처님 좋아서 여기 오는게 아니여. 이 처자 스님들 보고 오는겨”라고 외쳐 신도들이 박수로 환호했던 날도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박스 할머니’는 누가 성림사 가는 길이라도 물으면 절 입구까지 안내하는 ‘사찰 가이드’가 됐다. 할머니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이면 3만원을 등값으로 들고 왔다.

성림사의 부처님오신날은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비빔밥이 백미다. 깔끔하고 완벽한 두 비구니 스님의 손맛이 제대로 배인 산나물비빔밥. 현담스님은 “가정집 부엌이 공양간이니 얼마나 좁았겠느냐”며 “거기서 보살님들과 몸 부딪혀가며 정신없이 비빔밥을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초파일에 절에 왔는데 사람이 적으면 흥이 나지 않잖아요. 게다가 절도 초라하기 그지없고…. 그래서 부처님오신날 일주일 전부터 ‘어르신들 맛난 비빔밥 드시러 오세요’라고 적힌 방을 붙이고 다녔어요. 누가 언제 얼마나 올지도 모를 비빔밥 준비하느라 정말이지 눈코 틀 새가 없었지요.”

이처럼 정신없는 부처님오신날. 두 스님도 사람인지라, 부지기수로 다툰다. 무슨 일이든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야 하고, 마음에 안차면 거친 일도 당신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해치우는 광용스님은 비교적 느슨하고 남에게 맡긴 일은 끝까지 맡겨놓고 보자는 제자 현담스님을 마땅찮게 여기기 나름.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이라 1분1초가 급한 상황에서 예민해진 두 스님이 어찌어찌하여 다투면 그 상황은 이렇다. 광용스님은 “(답답한 마음에 제자의)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보따리 싸라고 하면 진짜 나갈까봐, 밖에 현수막 거는 곳으로 나가 있어!”라고 소리지른다.

그러면 현담스님은 “서러운 마음에 뒷산으로 막 뛰어올라가기도 하고, 다실 찻상 옆에 대자로 누워서 심통을 부린다.” 현담스님은 “그러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화가 울려요. ‘어디야?’라고 하셔서 ‘다실이요!’라고 시쿤둥하게 대답하면 스님이 다실로 오세요. 스님이 다실에 들어오면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광용스님과 현담스님은 이렇게 옥신각신하면서도 도반처럼 모녀처럼 ‘아름다운 사제’다. 십수년간 가난한 절살림 굳건히 꾸려오면서 피눈물 흘리며 오직 수행과 포교에만 쉼없이 정진했다.

100여명의 비빔밥을 다 준비해놓고, 깜박하고 밥솥에 불을 넣지 않아 밥이 안됐던 사연, 절에 오는 길을 닦기 위해 팔지 않겠다는 땅주인들을 설득해서 어렵사리 입구를 정비했던 일, 수관이 막혀 천장 물이 새 부처님 머리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던 아픔….

지난 15일 두 스님은 “부처님이 한분이셔서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1년 내내 절시봉하느라 몸이 닳는데, 부처님이 두세분이시면 초파일을 두세번 어찌 쇱니까? 한번이니까 힘들어도 행복하게 치르지요.”

[불교신문 2820호/ 5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