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다시 말해 문수보살은 선재에게 훌륭한 사람만을 찾아가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떠한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가르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악마라 할지라도 악마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것이고, 철학이 있는 한 그것을 배우라는 의미이다.
그 속뜻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사람이고, 복이 있는 사람이며, 권위가 있는 사람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소중하며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재와 선지식은 둘이 아니다. 선지식 이외에 선재가 없고 선재 이외에 선지식이 없다. 즉 선재와 선지식은 불이(不二)의 입장이다. 그렇다. 가르치는 스승, 배우는 수행자가 둘이어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사람이 곧 배우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이 곧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썽꾸러기 자식을 통하여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화내는 남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화났을 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추한가를 볼 수 있다. 융통성이 없고 이기적인 이웃사람으로 인해 관용과 이해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통감하게 되고, 권위주의적인 직장 선배를 통하여 아만과 자비심의 차이를 역설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당신 생각만을 내세워 며느리의 입장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는 시어머니로부터 먼 훗날 자신의 자화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다짐하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딴 짓하는 학생들을 보며 학창시절 반항아였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들 모두가 나에게는 소중하고 고마운 스승들이다. 이들은 적어도 나에게 자극과 활력을 주고, 또한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선지식들인 셈이다.
[불교신문 2797호/ 3월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