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전국비구니회를 이끈 회장 명성스님이 지난 10월26일 청도 운문사 죽림헌을 거닐고 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길을 내딛으며 미소를 짓는 스님의 모습이 가을하늘처럼 맑다.

청도 운문사의 가을은 아름답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나와 펼쳐지는 가로수 길과 청도 시내를 지나 호젓한 느낌의 댐을 돌아가는 길은 인상적이다. 사찰에 들어서면 잘 정돈된 전각과 수백년 된 은행나무의 샛노란 색깔이 감탄을 자아낸다. 그 풍광은 눈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마음으로 전해지는 법향이 있다. 지난 8년간 전국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을 이끌어 온 명성스님의 법향은 운문사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지난 10월26일, 8년간의 회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명성스님을 운문사 죽림헌에서 만났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도량이다. 직장, 버스 안

가정이 바로 수행도량…

- 오는 20일 퇴임하는데, 지난 8년간 전국비구니회를 이끈 소회를 말씀해 달라.

“처음 여러 스님들이 회장에 추대할 때 세가지 이유로 사양을 했다. 능력이 부족하고, 운문사와 서울간 거리가 멀고, 나이가 많아 극구 사양을 했다. 결국 비구니회장을 맡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비구니회 임원 스님들을 비롯해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협조를 해줘 소임을 회향할 수 있게 됐다. 매우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여러 행사를 진행하느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많은 사부대중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 재임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이 있는가.

“전국비구니회 주최로 지난 2004년 서울에서 개최한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는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인 행사였다. 세계 29개 국가 1000여 명의 비구니 스님과 여성불자들이 동참한 행사였다. 또 2006년과 2008년에는 태국에서 개최한 웨삭(Vesak)데이와 2007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개최된 ‘승가에서의 여성불자의 역할에 대한 국제대회’에 참가해 남방불교국가에 비구니 교단을 인정해달라고 건의했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티베트에서 달라이라마의 발원으로 비구니 승단을 건립할 때 40명의 비구니 스님들과 참석하는 등 한국의 비구니 교단을 세계에 알리고, 비구니 교단의 필요성을 설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이렇게 각종 국제불교대회에 참석한 결과 한국의 비구니 승가는 세계 비구니와 여성불자의 롤모델이 됐고,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또 역대 원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 삶을 정리하기 위해 포럼을 개최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 1, 2권을 출간했다. 원래 상중하 세권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까지 두 권이 출간됐다. 비구니회의 소식을 담은 회보도 발간했다.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러한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차기 비구니회장 스님께서 잘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에는 한국 비구니 승가의 수행전통에 대한 포럼을 개최하는 등 국내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 위상에 대한 노력도 많이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활동은 교육불사를 중심으로 비구니 스님들의 결속을 다지고자 노력했다. 2006년 비구니 수행전통에 대한 포럼을 비롯해 2007년에는 비구니 스님 32명을 초빙해 전국비구니회관에서 법화산림을 열었다. 사부대중의 호응이 매우 좋았으며, 국내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또 2009년에는 한 비구니 스님의 보시원력으로 무비스님을 모시고 전국 비구니 스님들을 대상으로 <유마경> 강의를 열었다. 이러한 교육불사를 통해 비구니 승가의 나갈 길을 다함께 찾아보고자 했다.

또 비구니 스님의 교육불사에도 관심을 갖고 내가 쓴 서예작품과 큰스님들의 작품을 모아 서화전을 개최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으로 장학재단을 조성해 올해 2회째 장학금을 지급했다. 앞으로 장학재단이 더욱 성장해 보다 많은 인재육성에 활용되길 기원한다. 재가불자를 위해 전국비구니회관에 다양한 문화강좌를 개설했다. 사찰요리 강의, 서예, 꽃꽂이, 불화제작반 등을 열어 전국비구니회관의 도심포교 도량으로서 역할을 확대했다.”

-비구니회를 이끌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다. 비구니회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제 비구니회는 전국 비구니 스님들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국비구니회가 더욱 발전하려면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집행부는 서로 소통하고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한다. 현 비구니회는 1968년 우담바라회가 발족한 것이 시원이다.

1996년에는 수서에 부지를 매입해 전국비구니회관 불사가 진행됐는데 한마음선원 등 전국의 많은 비구니 스님과 불자들이 아낌없는 희사를 해줬다. 이후 회장 소임을 맡아 비구니회의 결속을 이끌어 내고 회관 운영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난제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 향후 비구니회관을 중심으로 교육과 포교 불사를 이루는데 후임 회장 스님과 집행부가 능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언제 어디서든 정진을 해야 한다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면

맑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어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있는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불사다. 지금까지는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도량불사와 사찰 창건이 주된 불사였다. 이제는 많은 사찰 불사가 이뤄져 신도들이 신행활동을 하고, 전통문화를 알리고 지키는데 큰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도제양성과 출재가를 위한 교육불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불교계가 돌봐야 한다. 또 스님들의 노후복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한국불교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노후복지를 위한 불사는 종단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비구니회를 비롯한 모든 사부대중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비구니 스님들은 특히 어떤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가 언어 장벽이 너무 두텁다는 것이었다. 우리 비구니 스님들은 세계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청정한 수행과 고학력 등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언어 소통의 문제로 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잘 피력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사회를 이끄는 여성지도자로서 포교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가야 한다. 종단에서 올해 화운사에 비구니 영어국제학교를 건립한 취지도 이런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호스피스, 유치원, 사회복지 등 사회의 다양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부처님의 자리이타 가르침을 사회에서 실현시켜야 한다. 그것은 부처님 제자로서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비구, 비구니 승가는 새의 두 날개,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생각한다.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때 새는 더욱 높게 날수 있고, 수레는 크게 움직일 수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끊임없는 정진을 당부한다.”

   
 
- 최근 전국비구니회장 선출이 과거와 달리 선거방식으로 진행됐다. 선거는 민주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각종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과 후임자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부탁한다.

“지금까지 비구니회장은 추대로 이뤄져 왔다. 이것이 승가의 여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올해 10대 비구니회장 선출 또한 덕망있는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경선을 치르게 됐다.

하지만 선거를 계기로 전국비구니회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고, 비구니회에 거는 기대와 관심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선거 당일에 전국에서 140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석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보면서 ‘이들이 모두 우리의 비구니 승가 지도자’라는 생각을 했다.

후보자로 나선 명우스님, 운달스님 모두가 청정한 수행을 유지하며, 훌륭한 역할을 해 온 비구니 승단의 지도자다. 두 분이 모두 회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신임 회장에 선출된 명우스님을 중심으로 대중과 약속한 공약들을 잘 이행하면서 한국 비구니 승가의 발전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특히 운달스님을 지지했던 스님들의 뜻까지 잘 헤아리고 섭수하는데 힘을 기울여 달라. 운달스님은 안타깝겠지만, 대중의 공의를 수용하고 원융한 마음으로 차기 집행부를 도와주기를 당부한다. 모두가 비구니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노고를 희생하려고 발심한 사람들이니 잘 화합하리라 믿는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이제는 좀 쉬고 싶다. 출가자 모두가 그렇듯, 제 살림에 대한 욕심이 있다. 수행을 더 하고 싶다. 무엇보다 <화엄경>을 쓰다가 일이 바빠 중단한 바 있다. 원고를 다시 정리하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 불자들에게 가르침이 될 말씀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도량이다. 직장이면 직장, 버스를 타고 있으면 그 자리가, 또 가정이 바로 수행하는 도량이다. 언제 어디서든 정진을 해야 한다.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곧 수행이고, 항상 맑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을 철저히 믿고 계정혜 삼학을 잘 닦아야 한다. 이렇게 수행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 법을 전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住 立處皆眞)의 가르침이다.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진 신재호 기자

   
 

■ 명성스님은…

비구니 교육불사의 효시

UN…탁월한 불교여성상

1952년 해인사에서 선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58년 선암사 성능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고, 선암사 강원 강사를 역임했다. 이후 서울 청룡사 강사를 거쳐 1970년 운문사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부터 운문사 주지 소임을 겸임, 1987년 운문사승가대학장, 1997년 운문승가대학원 원장을 맡아 운문사를 세계 최대 수준의 비구니 교육도량 대가람으로 일신시켰다. 1998년 동국대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운문사승가대학원의 대외적 인지도를 높인 대표적으로 예로 지난 2008년에 중국 최고 명문 칭화(淸華)대학교와 학술교류를 맺은데 이어, 일본 임제종 종립대학인 교토 하나조노대(花園大)와 학술교류협정을 맺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스님은 제3~5대와 8, 9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89년 전국비구니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제8대 전국비구니회장을 맡아 2007년 재임하면서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는데 큰 업적을 세웠다. 지난 2007년 비구니 최고의 법계인 명사 법계를 품수 받았다.

스님은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 참석했으며 2001년에 ‘Sasana Kirthi Sri’ 공로상을, 2008년 UN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협회가 수여하는 ‘탁월한 불교 여성상’을 받았다.

<불교학논문집(佛敎學論文集)>, <화엄학 개론(華嚴學 槪論)>, <구사론대강(俱舍論大綱)>, <아비달마순정이론(阿毘達磨順正理論)> 등 다수의 논문과 번역서를 집필했다.

[불교신문 2768호/ 11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