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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고 싶을 때 먹는 갈색의 ‘나물찌개’...혜범스님(36기) 0
 작성자: 석림동문회  2025-07-21 11:00
조회 : 3,769  

[절밥 이야기] 서울 수월암 ‘채개장’

서울 기온이 37.8도까지 올라갔던 7월8일, 수월암 주지 혜범스님이 내어준 여름 밥상. 채개장을 비롯해 연잎밥, 묵은지김치찜, 호박나물, 감자전과 깻잎전, 오이간장장아찌, 가죽무침, 더덕무침, 도라지유자무침까지 한낮의 성찬이었다.

육개장의 어원은 개장국이다. 유래를 안다면 ‘육계장’이라고 오타를 낼 일은 없을 것이다. 개고기에 이런저런 채소를 섞어서 고아 끓인 이른바 보신탕이다. 얼큰하고 걸쭉한데 개고기의 심한 누린내를 잡기 위해 양념을 강하게 써서다. 개장국은 개를 때려죽여서 만드는 음식이다. 쇠고기로 대체되면서 육개장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국민음식으로 정착했다.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 돼지고기를 넣으면 돈개장도 가능하다. 특히 입맛을 돋우고 이열치열로 땀을 낼 수 있어서 여름에 인기가 좋다. 임금들도 복날에는 육개장을 먹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스님들은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채개장’이다. 고기를 삶는 대신 채수(菜水)로 깊은 맛을 낸다. 나머지 재료들은 육개장과 거의 비슷하다.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입소문이 번졌다. 갈빗살처럼 생긴 콩단백을 넣으면 ‘두(豆)개장’이 된다. 개장국보다는 폭력성이 덜하지만 육개장도 소를 잡아야 한다.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수월암(水月庵)은 1968년에 창건됐다. 서울의 땅값은 비싸고 사찰의 규모는 작다. 멀찍이서 보면 대웅전과 대웅전의 절반 크기인 지장전 두 채만 보인다. 제4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영암스님이 머무른 바 있다. 주지 혜범(慧梵)스님이 시민들에게 사찰음식을 가르치고 명상법회를 열며 운영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푸지게 대접하고, 1년에 한 번씩 성북구의 후원을 받아 사찰음식 축제를 연다. ‘장 뱅킹’이라 하여 장(醬)도 직접 담가 나눠준다.

세 살 때부터 이 절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다. ‘성북동’하면 으레 부촌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히 330번지를 기점으로 양상이 판이하게 달랐다고 한다. “어릴 때만 해도 완전히 달동네였어요.” 겨울이면 아랫동네에서 수돗물을 길어다 썼다. 택시가 안 다녔고 심지어 버스도 안 올라왔다. 번호판에 ‘외’라고 적힌 승용차들만 씽씽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교’의 약칭이었다. “그래서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었어요.” 아예 더 높은 오르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끌고 다녔다.

삼복더위의 특별한 보양식

혜범스님은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했다. 대중을 이룬 절에서 큰스님을 위한 공양을 준비하는 소임을 ‘찬(餐)시자’라고 한다. “운문사에서는 3학년들이 3개월씩 돌아가며 찬시자를 맡는데 눈물깨나 흘렸지요.” 1학년은 잔심부름, 2학년은 농사를 지었다. 3학년은 후원(공양간)에서 음식을 하고 절 안의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실행하고 감독했다. 군대로 치면 병장에 해당할 4학년들은 공부만 했다. 출가자가 급격하게 감소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고기’ 없고 ‘마늘’ 없는 육개장

아무튼 오랜 반복 숙달로 잔뼈가 굵은 스님이 내어주는 채개장을 맛보았다. 느타리버섯과 고사리를 넣는 것은 육개장과 동일하다. 역시 육개장처럼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푸는데 된장을 첨가한다는 게 특이하다. 고기의 식감을 지닌 표고버섯, 단백질과 오메가3가 풍부한 들깻가루가 육개장의 영양분을 따라잡는다. 쌀가루로 점도를 높인다. 토란에도 눈이 갔다. 숙주나물 대신 콩나물을 넣어 한결 상큼하고 바삭하다. 그동안 유부가 어묵의 일종인 줄 알았다. 스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부를 넣길래 어쩌나 싶었는데, 본래 두부를 튀겨서 말린 것이 유부다. 베지테리언들과 달리 스님들은 계율에 따라 마늘도 못 먹는다. 심심하고 담백한 채개장에서 새삼 느꼈다. 육개장도 마늘 맛이었다.

육개장은 벌겋다. 팥이 그렇듯이 귀신을 쫓는다는 색깔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의 대표 음식이 됐나 하는데 연원은 분명치 않다. 저자에서는 ‘죽고 싶냐’는 협박을 에둘러서 ‘육개장 먹고 싶냐’고 으르기도 한다. 분명한 건 고춧가루와 소금을 듬뿍 넣어 육개장이 잘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마솥째 끓여놓고 문상객들에게 부지런히 내주다 보면 어느덧 탈상(脫喪)이 온다. 더군다나 그득한 고기와 건더기 덕분에 엄숙한 자리에서 괜한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다. 뜨거운 염절(炎節)에 환영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반면 채개장은 재(齋) 음식이 아니다. 또한 적색이라기보다는 갈색에 가깝다.

‘얼큰함’보다 중요한 것은…

스님들은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혜범스님의 채개장에 취나물이 들어가는 이유다. “채개장이란 명칭은 육개장에서 착안해 작위적으로 붙인 이름 같고 그냥 일종의 ‘나물찌개’예요.” 거듭 말하거니와 사찰음식의 진정성은 미각이나 건강보다 청빈에 있다. 사정이 이러하여 너무나 송구했다. 원래는 채개장만 요리해달라 부탁했었다. 스님은 연잎밥에다가 홍시를 추가한 묵은지김치찜, 호박나물, 감자전과 깻잎전, 오이간장장아찌, 가죽무침, 더덕무침, 도라지유자무침까지 준비해 상다리를 부러뜨렸다. 어디 가면 ‘참 맛있게도 먹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릇들을 싹 다 비웠다. 이 게걸스러움이 부디 참다움이나 너그러움으로 회향되기를.

사찰음식 2급 장인 혜범스님이 채개장을 조리하고 있다.
사찰음식 2급 장인 혜범스님이 채개장을 조리하고 있다.

 

■ 여름의 사찰음식

콩국수와 연잎밥… 상추줄기로 만든 김치

 

콩은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만큼 양질의 단백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더구나 성질이 본래 차다. 무더위에 콩국수를 즐기는 이유다. 사찰에서도 그렇다. 삶은 백태를 곱게 갈아 만든 국물에 소면과 오이채를 곁들인 시원한 면 요리다. 혜범스님의 경우 어른 스님들에게는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는 더 비쌌던 잣도 콩국수에 갈아넣었다. 들깨 역시 항산화와 면역력 강화에 좋다. 심혈관, 피부, 모발의 건강도 증진한다. 예로부터 노스님들은 들기름을 매일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복용한다.

‘제철음식’ 이론은 여름에도 적용된다. 여름에 나는 채소를 먹어야 여름에 강해질 수 있다. 오이 애호박 가지 등은 몸의 열을 식히고 입맛을 되찾아준다. 상추는 그중에서도 재배가 쉬운 편이다. 사찰음식 명장 선재스님은 “뜨거운 여름에 어울리는 음식은 잎이 넓은 채소들”이라고 전했다. 잎에 영양분을 모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쌈으로 자주 먹는 잎도 애용하지만 줄기를 뜻하는 상추대궁으로도 김치를 담그거나 전을 부친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도 7~8월에 꽃핀다. 연잎은 피를 맑히고 해독작용을 한다. 거기에 다양한 잡곡을 섞은 찰밥과 결합하면 최고의 여름철 보양식이 된다. ‘감자가 흉년이면 환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대표적인 구황작물인 감자 역시 풍부한 탄수화물로 폭염에 지친 기력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분이 낮고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듬뿍 가졌다. 철분도 많아 빈혈에도 좋다.

 

( 불교신문 
2025.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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