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눈이 잘 안보여 가족들에게 짐만 됐는데, 이제부턴 제가 도울 차례입니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캄보디아 시엠립에 사는 헤하이 씨(75)는 오토바이를 몰며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백내장이 심해지면서 시야가 흐릿해졌고,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까웠다. 급기야 왼쪽 눈마저 나빠지면서, 혼자 생활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런 그에게 다시 세상을 선명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김안과병원과 로터스월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해외 의료봉사를 통해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두 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나왔다. 오른쪽 눈에는 아직 안대가 붙어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오래 기다려온 수술을 마친 안도감과 기쁨이 서려 있었다.

김안과병원(원장 김성주)과 로터스월드(이사장 성관 스님)는 6월 15일부터 20일까지 캄보디아 시엠립 BWC 아동센터에서 ‘제31차 해외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봉사에는 손경수 의료봉사단장을 비롯한 김안과병원 의료진 17명이 참여했으며, 3년 전부터 의료봉사에 동참하고 있는 건양사이버대 김용덕 부총장을 포함한 교직원과 학생 14명도 함께했다. 로터스월드 BWC 아동센터의 재학생과 졸업생들도 기본 검진과 통역을 맡아 힘을 보탰다.
진료 첫날,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환자들로 아동센터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의료봉사 초기만 해도 현지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정확한 진단과 전문 장비, 뛰어난 수술 결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봉사단은 아동센터 방과후 교실을 임시 진료소로 꾸며 환자들을 맞이했다. 진료 구역은 접수·검사·수술·회복까지 체계적으로 나뉘었고, 익상편과 백내장 수술은 센터 내 마련된 수술실에서 진행됐다. 첫날에만 약 600명의 주민이 진료를 받았고, 이 중 20명이 수술을 받았다. 진료를 기다리던 110여 명은 예약이 끝나 다음 날을 기약하고 돌아갔다.
캄보디아 주민들은 강한 자외선과 열악한 위생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어 안과 질환 발병률이 높은 상황이다. 특히 자외선이나 먼지, 오염된 물 등 외부 자극으로 질병이 쉽게 생기지만, 의료 접근성이 낮아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실명하거나 안구를 적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의료진은 시력 측정, 망막 초음파 검사 등 정밀 진단을 통해 환자들의 상태를 세심히 점검했다. 단순한 약물 처방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있지만,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도 여럿이다.


익상편 수술을 받은 플른럼 씨(69)는 “눈이 뿌옇게 흐려져서 고생이 많았다. 수술은 금방 끝났고 아프지도 않았다”며 “내일 다시 검사하러 오는데 잘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안 시술도 눈에 띄는 활동 중 하나다. 사고나 질병으로 안구를 적출한 환자들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뱃소팔 씨(67)는 10년 전 화재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고, 4년 전 로터스월드에서 의안을 시술받았다. 뱃소팔 씨는 “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게 두려워 피해 다니기만 했다”며 “의안을 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도 긴장하지 않고 웃으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4살 소녀 리아는 3살 때 사고로 한쪽 눈을 잃고 4살 때 의안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관리를 소홀히 해 염증이 생겼고, 현장에서 꾸지람을 들었다. 손경수 단장은 “예쁜 눈을 오래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리아는 “앞으로는 잘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진료소 한쪽엔 감기·복통·알레르기 등을 살피는 내과 진료도 운영됐다. 의안 관리법, 안약 사용법 등 생활 밀착형 안내도 함께 이뤄졌다.
하루종일 진료와 수술이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봉사단원들의 얼굴에는 보람이 묻어났다. 김정민 김안과병원 의사는 “멀리서 찾아온 환자가 많다는 말에 놀랐다”며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분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4년째 봉사활동에 참여 중인 김지혜 원무과 팀원은 “몸은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정말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용덕 건양사이버대 부총장도 “봉사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라며 “학교에선 얻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로터스월드는 원활한 의료봉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현지 조율과 통역, 시설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을 찾은 이사장 성관 스님은 의료진을 격려하고 환자들에게 따뜻한 덕담도 건넸다. 성관 스님은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삶의 기본”이라며 “젊고 돈이 많아도 몸이 아프면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저개발국가는 초기 증상이 방치돼 평생 고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한국 의료진이 매년 이곳을 찾아 아픔을 나누고 꾸준히 돌보며 보람된 일을 해주고 있다”며 “정기적인 방문은 단발성 도움이 아닌 지속적인 관리로 이어진다. 많은 캄보디아 주민이 맑은 눈을 선물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한편, 김안과병원과 로터스월드는 2007년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약 4만3000여 명을 진료했고, 백내장 등 안과 수술만 2800여 건을 진행했다. 이번 봉사에서는 누적 수술 건수가 3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