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스님이 출가열반절을 맞아 지난 19일 조계사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참고 견디는 마음을 지니고
부처님뜻 어긋나지 않는 삶 살아야
불생가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지금 읽고 있는 게송은 부처님께서 가비라성에서 탄생하시고 마갈타국에서 성도하시고, 바라나국에서 설법하시고, 쿠시나가라성에서 열반하셨다. 오늘 출가열반절을 맞아 동참하신 모든 분들께 부처님의 가호와 모든 서원이 성취되길 기원한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 여리실견분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보리야. 내 뜻이 어떠하냐. 가히 신상으로 부처님을 보느냐.’ ‘신상으로서 여래를 보아서 부처님을 알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지수화풍으로 된 육신을 보는 것이지 본성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법신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색으로 보는 것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지혜의 안목이 아니고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범부는 색신여래만 보고 법신여래는 보지 못합니다. 진짜 부처님의 법신여래를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법신은 허공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2500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 법문을 들을 수 있는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을 잘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능히 신심을 내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근을 심어야 합니다. 한량없는 선근 없이는 부처님 법문을 들을 수 없습니다. 2500년 세월이 흐른 뒤에 능히 대승의 무상계를 가져서 24시간 가운데 마음이 항상 공적해 상에 결박한 바를 입지 아니하면 부처님 법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야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밝다. 우리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악한 생각을 일으켜도 병이고 선한 생각을 일으켜도 병이다. 이 마음에 아무것도 없어야 세상을 보는 눈이 선하다.
선도 악도 다 버려라.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능히 상을 여의고 수행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진리를 체득할 것이다. 따라서 참고 견딜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환희심을 바라게 하며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
여러분 신심을 가지라고 하는데 신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처님을 믿는 것을 신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심은 반야바라밀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반야바라밀을 실천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입으로만 반야바라밀을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불교는 맹신하는 종교가 아니다. 깨달음의 종교다.
이것은 뗏목의 이치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뗏목에 비유하셨다. 건너갈 때는 나룻배가 고맙지만 강을 건넌 뒤에 다시 어깨에 짊어지고 갈 수 있는가. 건너갈 때는 빈 몸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육도중생이 본래 상이 없는 줄 알면 정정심을 얻게 된다. 지금 여러분이 부처님께 달라고 하는 것은 막연히 ‘복주시오’ 하는 것이다. 중생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는 것이다.
아상이라고 하는 것은 ‘나는 재산이 많다’ 이런 것으로 교만해 지면 아상이 있다는 것이다. 인상은 교만방자한 것을, 중생상은 ‘내가 좋은 일을 했다. 나쁜 일은 다른 사람이 했다’는 것을 내는 마음이며, 수자상은 ‘내가 금은보화를 많이 지녀 죽은 뒤 천상에 태어나겠다’라는 생각을 뜻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실천할 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여일 수 있다.
여래를 깨달아서 자연히 복을 얻음이 한량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복과 지혜를 구족한 분이다. 우리 중생은 복이 있으면 지혜가 없고 지혜가 있으면 복이 없다. 복과 지혜를 모두 닦아라.
열반제일을 맞아 무궁히 부처님의 법을 잘 닦아야 겠다는 서원을 세우시라. 법문도 자세히 듣고 부처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한다. 한량없는 부처님의 불보살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홍다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