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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부안 내소사의 美 ! 대웅전 꽃살문양 0
 작성자: 다나  2009-05-27 20:00
조회 : 4,211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백제 무왕때 창건되었다는 내소사를 찾았다.
절 입구부터 시작되는 울창한 전나무 숲길과 일주문 앞까지 단풍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없음을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래도 또 내소사를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능가산을 배경으로 한 내소사의 전경... 능가산 주봉우리를 약간 비낀듯이 자리잡은 대웅전의 배치는 주봉의 강함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능가산전체적인 지형을 고려하여 마치 병풍이 둘러친듯 배치한 모습은 옛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고 하겠다.


♣ 대웅보전 ♣



♣ 능가산 봉우리 ♣


봉래루는 대웅보전의 높이를 감안하여 배치하다보니 누각밑의 높이가 낮아, 누각밑으로 통과하기에는 아주 불편한 형태를 띠고있다.

♣ 봉래루누각 ♣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정면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수평적인 가람배치로 밋밋해질수 있는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웅전의 팔작지붕을 날개가 펼친듯이 얹어놓아 능가산과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 대웅보전 처마선 ♣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공포는 외3출목, 내5출목으로 복잡하게 짜여 있으며 밖으로 삐져나온 제공의 쇠서들이 겹겹으로 중첩되어있다.

♣ 대웅보전 공포 ♣



♣ 대웅보전 내부기둥 ♣



♣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대웅보전 기둥 ♣


대웅보전 충량머리에 새겨진 용은 한마리는 잉어를 물고있고, 한마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추녀아래의 귀한대에도 용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 용은 여의주 대신 목탁을 물고있는 익살스런 표정이다.
다포계의 웅장함에 긴장감을 잊게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 내부장식 ♣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 본존불 ♣


대웅전 부처님 뒷벽면에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백의관음보살님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흙벽에 회칠을 하여 바탕을 하고 그 위에 그린 것인데 흙벽이 조금씩 손상되면서 그림도 같이 손상되고 있다.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색의 天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 백의관음보살상 ♣


수행하는 스님의 모습이 아름답다.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각 솜씨가 정교하게 8짝의 문짝을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로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보는이마다 절로 감탄를 자아내게 한다.
오랜 세월에 채색은 지워지고 없어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지만 목공의 불심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지난해 관조스님이 꽃살문으로 전시회를 가지면서 더욱 세인들의 관심을 가지게 된 꽃살문은, 이제 주5일제로 문화유적답사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찰을 찾을때는 꽃살문에 대한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다고 하겠다.







내소사 고려동종은 청자빛을 연상케 한다. 영롱한 푸른빛에 살아나는 상하대의 모란당초문은 직접보지않고는 형용할수 없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내소사 대웅전은 못하나 쓰지 않고 깍은 나무를 모두 끼워 맞춰 지은 건물로 그 노력과 공이 대단한 건물인데 거기에 얽힌 전설이 매우 신비롭다.

♠ 관음조의 전설--

법당이 세워진 후 전각에 단청(丹靑)을 하고 벽화를 그릴 적임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벽화를 그릴 터이니 벽화를 그리는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달이 다 되어도 화공이 나오지 않고 기척이 없자, 호기심 많은 이 절의 선우스님이 살짝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화공은 없고 오색 영롱한 관음조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오는 스님을 보더니만 단청 한 곳을 마무리하지 못한채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그 관음조는 능가산 중턱에 앉았는데, 그때부터쯤 노스님이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스님을 관음조의 화신이라고 불렀으며, 이후에도 암자에 스님들이 살았으나 어느때부터 암자는 폐쇄되고 터만 남게되었다.
이제 그 암자터를 복원하여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하니 모든 공덕을 성취하는 관음기도도량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 동쪽 도리는 바닥만 채색되고 덧그림이 빠져 있다고 전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의 목수는 호랑이가 현화(現化)한 대호선사(大虎禪師)이고 벽화를 그린 관음조는 관세음보살의 현화라고 한다.

♠ 내부공포에 얽힌 전설--

대웅보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남쪽 천장의 공포 한곳에 목침 한 개가 비어 있다. 그리고 동쪽 단청에도 유독 한 곳에는 단청칠이 없어 부자연스러운 곳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청민선사가 내소사를 중건할 때, 대웅보전 재건을 맡을 목수를 불렀는데, 목수는 묵묵히 나무만 다듬었다.
말한마디 하지않고 나무만 깍고 있으니 장난기가 발동한 한 사미승이 목수가 깍고 있는 나무토막 하나를 몰래 감추어 버렸다.
나무를 다 깍았다고 생각한 목수는 깍은 나무토막 수를 헤아렸고 하나가 부족한 것을 알 게 되었다.
목수는 자신의 수양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생각해 청민선사에게 절을 지을 수 없다고 했지만, 청민선사는 그 부족한 한토막은 이절과 인연이 안되는 것 같으니 그만 생각을 바꿔 절을 지어달라고 사정했다.
후에 사미승의 소행임을 알게 된 목수는 부정탄 재목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해 그 나무토막을 빼고 법당을 완성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법당안에 오른쪽 윗부분 공포 내5출목의 목침 한개가 비어 있다. 그 옆에도 빈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단청의 유무를 가지고 보면 분명히 알수 있다.
원래 없었던 곳은 단청이 칠해져 있을 것이고, 지은 다음에 나중에 없어진 부분은 단청도 없을테니 말이다

○ 내소사 사천왕상 ○ 내소사의 연꽃

[ⓓ20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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