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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특집 / ‘무소유 삶’ 법정스님
글쓴이 : 석림동문회 날짜 : 10-03-13 23:05 조회 : 2425


<사진설명> 법정스님은 1993년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립기념관과 경복궁, 창덕궁 연못의 연꽃을 제거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어이없는 심정을 이렇게 얘기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1970년대 불교신문 ‘편집국장’ ‘주필’ 맡아

칼럼 등 41편 연재…날카로운 필력 드러내

“무소유,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주고 맑고 향기로운 삶을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이 지난 11일 입적했다. 불교의 가르침을 간결하면서도 쉬운 탁월한 필력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직접 설천함으로써 종교를 초월해 많은 국민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해 국민들이 불교에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데 큰 발자국을 남긴 수행자였다. 한국리더십센터가 지난 2004년 실시한 ‘CEO가 추천한 한국의 신뢰받는 리더-종교계 분야’ 설문결과에서 전체 응답자의 34%에 해당하는 592명이 법정스님을 추천해 1위를 차지하는 등 불교계를 뛰어넘어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추앙받았다.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상고와 전남대 상과대학 3학년을 수료한 뒤 진리의 길을 찾아 출가를 결심한다. 1954년 통영 미래사에서 조계종 초대종정을 역임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956년 7월 효봉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9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각각 수지했다. 1959년 4월 해인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스님은 쌍계사와 해인사, 송광사 선원 등 전국 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함께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과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유신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은 법정스님은 민주화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송광사로 내려 가 토굴인 불일암을 짓고 홀로 수행정진했다.

290만부 ‘무소유’ 베스트셀러

불일암에서 홀로 있으면서도 대중과 함께 수행하듯 철저한 자기 질서 속에 독서와 수행에 힘썼던 법정스님은 34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많이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무소유>를 발간했다. 법정스님의 대표 저서인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첫 출간 이후 쇄와 판을 거듭하며 29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 대해 “우리는 필요에 따라 소유하지만 그 소유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갖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에 얽매이는 일, 그러므로 많이 가지면 그만큼 많이 얽매이는 것”이라며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주필 소임을 맡았던 법정스님은 칼럼과 시, 설화 등 41편을 연재하며 날카로운 필력을 드러냈다. 법정스님은 “‘부처님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빌다니,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느냐’며 월남전 파병 반대 칼럼을 썼다가 승적 박탈 직전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맑고향기롭게’ 시민운동 주창

저작 활동으로 명성이 높아져 불일암을 찾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스님은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자리를 옮겨 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살며 글로써 중생제도에 앞장섰다. 1993년 김영삼 정권 당시 일어난 종교편향사건이 스님을 다시 한 번 세속 일에 관여하게 했다. 1993년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립기념관과 경복궁, 창덕궁 연못의 연꽃을 제거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로 표현했다. 이어 날로 각박해져만 가고 메말라만 가는 우리 심성을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두루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살아가자는 순수시민운동 ‘맑고향기롭게’를 주창하게 된다.

1994년 창립한 맑고향기롭게는 전국 6개 지부 1만여 명의 회원이 “우선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니고, 이웃과 사회를 향한 나눔을 실천하며 소중하고 감사한 자연을 보전, 보존해가는 일에 힘쓰라”는 법정스님의 뜻에 따라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 이처럼 법정스님이 늘 강조하고 실천했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고 김영한)보살은 고급 요정의 대명사인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기증한다. 4차례에 걸친 사양 끝에 사부대중의 간청을 받아들여 1997년 12월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를 개원한다. 사회적 화두가 된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3차례에 걸쳐 단식정진한 지율스님을 지난 2005년 위로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종교간 벽 허무는데 앞장

법정스님은 김수환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맺을 정도로 종교간 벽을 허무는데도 앞장섰다. 길상사 개원법회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한데 이어 법정스님은 1998년 명동성당 축성 100돌 기념 초청 강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뒤늦게 접한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에 애도의 글을 전했다. 비판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크리스찬아카데미에 자주 참석하며 교류했다. 또한 길상사 앞마당의 관음보살상을 독실한 가톨릭신자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 12월 길상사 회주 소임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강원도 토굴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지난해 4월 대중 법문까지 연2회 길상사를 찾아 대중 법문하며 감로법을 전했다. 법정스님은 입적 하루 전날 밤 제자들에게 “어디서든지 내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정진의 힘으로 죽을 때 어지럽지 않도록 해라”며 후학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조계총림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은 “이 시대의 살아있는 스승이셨던 법정스님께서는 마지막 회향까지 <무소유> 등의 저서와 법문을 통해 말씀하신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며 우리들에게 크나 큰 깨침과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고 애도했다.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법구, 대나무 평상에 오르다

<사진설명> 법정스님의 법구가 출가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로 떠나는 날인 12일 오전 길상사 도량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 3000여 명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애도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장례의식하지 말라” 뜻 존중

‘관’ ‘수의’따로 마련하지 않아

길상사 등 서울지역 애도물결

‘무소유’ 삶을 실천한 서울 길상사 전 회주 법정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길상사에는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1일 오후부터 12일까지 법정스님의 분향소가 마련된 길상사 설법전에는 조문행렬이 100여 m에 이르는 등 불자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법정스님의 법구가 출가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로 떠나는 날인 12일 오전 도량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 3000여 명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법정스님의 법구는 이날 오전 극락전 앞마당에서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표한 뒤 영구차에 모신 후 송광사로 향했다.

상좌스님들에게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고 당부한 법정스님의 청빈함은 길상사 분향소에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스님의 뜻에 따라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대나무 평상 위에 스님의 법구를 모신 뒤 수의 대신 가사로 법구를 덮어 이운했다. 또 분향소에는 조의금은 물론 화환이나 방명록조차 마련되지 않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이어갔다.

이와 함께 12일 법정스님의 빈소를 방문한 고건 사회통합위원장이 스님으로부터 받은 친필엽서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고건 사회통합위원장은 “40년 전 전남 도지사로 있을 무렵부터 법정스님과 인연을 맺었다”면서 “그 후에도 길상사에서 여러 차례 친견했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고건 위원장에게 “선(禪)의 세계 개정판 감사히 받아 잘 읽고 있다”는 내용의 친필엽서를 보냈다.

또 방송인 김제동 씨는 11일 법정스님의 입적이 알려지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방안에 들어온 달빛도 손님인 듯하여 가만히 모셨다는 스님의 말씀이 아직 가슴에 뛴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출가본사 송광사…추모 ‘정진’

법정스님의 출가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는 침통함속에서도 마지막 가시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송광사는 12일 오전 서울 길상사를 출발해 이날 오후5시 도착한 법정스님의 법구를 문수전에 안치했다. 또 경내 지장전에 분향소를 마련해 조문객을 맞았다. 방학을 맞아 만행중인 송광사 학인스님들도 법정스님 입적소식을 접하고 속속 송광사로 모여 다비준비를 돕고 있다. 율원 스님들도 불일암을 지키며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정진을 했다. 법정스님의 뜻에 따라 국화 30여 송이로 장식한 분향소는 12일부터 스님과 불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법정스님 법구는 13일 오전11시 송광사에서 다비를 엄수한다.

이와 함께 맑고 향기롭게 경남지부는 11일 창원 성주사 설법전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12일 오후 늦게까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완수 창원시장 등 지역 인사와 불자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이밖에도 광주 무각사를 비롯해 송광사부산분원 관음사(주지 지현스님), 부산 맑고향기롭게 부산모임 (회장 박수관) 등 전국 각지에 법정스님의 빈소가 마련돼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권순학 경남서부지사장

 

[불교신문 2606호/ 3월17일자]

2010-03-13 오전 10:06:17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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